한비자 <한비자> (고전 14강)




덕치와 법치: 어떤 정치 체제가 효율적인가?

   공자의 덕치사상을 이어받은 맹자는 당시의 혼란이 지배 계급의 탐욕과 포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도덕적 자각과 덕성의 함양을 통하여 인()하고 의()로운 정치를 실행하도록 촉구하였다. 반면에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는 당시의 혼란이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들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엄격한 의 적용과 무거운 형벌을 통하여 강력한 군주권을 확보하는 길만이 혼란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물론 유가가 인의와 같은 도덕 규범을 앞세웠다고 해서 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자는 너그러움과 사나움 즉 덕과 형을 조화롭게 운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맹자 역시 인의라는 도덕 규범과 이라는 강제 규범이 동시에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 중 을 일차적인 것으로 그리고 을 보조적인 수단으로 간주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한비자는 인의와 같은 도덕 규범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오로지 만이 공적 영역에서 관철되어야 할 유일한 규범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한비자의 정치사상에서 흥미있는 것은 법치의 확립을 위해서 인의와 같은 도덕 규범은 반드시 배격되어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한비자는 왜 인의법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답하는 일은 유가와 법가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나아가서는 유교적 가치관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한국 사회의 규범 문화를 반성적으로 성찰해보기 위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주리라 생각한다.

 

한비자가 인의를 배경하는 여덟 가지 이유

1. 신하에 의한 인의의 시행은 군주의 통치권을 침해한다.

   신하가 곧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군주를 버리고 떠나가거나, 충간의 명목을 내세우며 군주의 의지에 거스르는 언행을 한다면, 이는 군주의 권위를 훼손하고 통치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신하 된 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명성을 얻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점차 세력을 늘려나가게 되면 군주의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한비자는 신하가 베푸는 인의는 공법에 위배되는 사사로운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2. 공이 없는 자에게 인애(仁愛)를 베푸는 일은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다.

   군주가 을 쉽게 베푼다면, 공이 없는 자가 상을 받게 되고 죄지은 자가 사면받게 되어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게 된다. 공자는 정치의 비결은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다가오게 하는 데 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한비자에 의하면 공자의 이러한 대답은 나라를 망치기에 딱 좋은 말이다. 왜냐하면 은혜를 베푸는 정치를 하면 공이 없는 자가 상을 받게 되고 죄지은 자가 사면 받게 되어서, 장차 법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군주가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때는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공적이 있어야 한다. 상응하는 공적이 없는데도 은혜를 베푸는 일은 결국 신상필벌이라는 사회적 신뢰의 훼손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3. 인애(仁愛)는 이득을 얻기 위한 도구적 수단에 불과하다.

   유학에서 이나 는 공리적 조건을 전제로 하지 않는 본래적 가치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비자는 을 공을 이룬 사람에게 제공하는 상()의 의미로 파악하고, ‘를 조건부적 보답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이나 는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본래적 가치가 아니라 단지 공적에 대한 대가또는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한비자는 은 가족과 같은 관계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사적 규범이지, -신과 같은 이익 관계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념이라고 보았다. 현실에서 부모-자식과 같은 혈연관계에서도 노후의 편의를 생각하여 이득을 계산하고, 딸보다 아들 낳는 것을 노동력으로써 선호하였는데, 하물며 군주-신하의 관계에서는 정이나 인과 같은 도덕 규범이 적용될 리 만무하다고 보는 것이다.

 

4. 백성들의 인성(人性)은 비열하기 때문에 인애(仁愛)로 교화할 수 없다.

   한비자는 인성에 대해 불신한다. 부모가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불초한 자식이 바르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며, 군주가 을 베푼다고 해서 백성들이 질서를 지키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불초한 자식을 길들이기 위해서 부모의 사랑이나 스승의 가르침과 같은 교화의 방식은 별 효과가 없으며 차라리 이 더욱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고 본다. 그는 백성들이란 사랑해주면 오히려 기어오르려 하고, 힘으로 위압할 때 비로소 고개를 조아리는 비열한 존재라고 여긴다. 형벌을 가함은 백성을 미워함이 아니라 사랑의 근본이 된다. 형벌을 우위로 하면 백성이 안정되고, 포상을 빈번히 하면 간악이 생긴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릴 때 형벌을 우위로 함이 다스림의 첫째이며, 포상을 빈번히 함은 혼란의 근본이다. 도대체 백성의 심성은 혼란을 좋아하고 법에 친숙하지가 않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포상을 분명히 하면 백성이 공을 세우려 힘쓰고, 형벌을 엄격히 하면 백성이 법에 친숙해진다.

 

5. ‘인의라는 사적 도덕은 법의 공공성을 파괴한다.

   한비자가 파악하는 도구적 수단의 은 보편적 도덕 규범의 성격을 띠지 못하고 편팢거이거나 파당적인 사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담당하고 있는 관직을 이용하여 지인이나 친인척에게 베푸는 은덕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파괴하고 특정 집단에만 이익을 몰아다주는 정실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비자는 공직에 몸담고 있는 관리가 를 베푸는 일은 곧 공공 재화의 유용편파적인 특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국가라는 공적 영역에서 인애라는 사적 규범이 작동하게 되면 편파성과 파당성이 발생하여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특정 가문이나 집단에 힘을 실어주게 되어, 결국은 공적 질서가 무너지고 군주의 권위가 약하된다고 보았다.

 

6. 효율적인 지배 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인애(仁愛)보다 중형(重型)이 효율적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애정보다는 위엄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위하주의적 통치 이념은 자연히 엄격한 법 집행과 무거운 형벌을 선호하는 중형주의적 통치 방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중형주의는 전기 법가인 상앙에 그 기원을 둔다. 한비자는 상앙의 법을 예로 들어 중형주의적 통치 방식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공손앙의 법에서는 작은 잘못도 무거운 형벌로 다루었다. 중죄는 사람이 범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작은 잘못은 사람이 쉽게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쉽게 피할 수 있는 작은 잘못을 피하도록 함으로써 범하기 어려운 큰 죄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잘 다스리는 길이다. 작은 잘못이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큰 죄에 이르지 낳게 한다면,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혼란도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한비자는 백성을 가엾게 여겨 형벌을 감면해준 제 경공을 예로 들면서, 인애의 정치는 오히려 악한 자를 이롭게 하고 선한 자를 해치게 되어 공적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비판한다. 형벌이 정당하다면 많더라도 많은 것이 아니며, 정당하지 못하다면 적더라도 적은 것이 아니다. 형벌을 느슨히 하고 너그럽게 은혜를 베푼다면 이는 간악한 자를 이롭게 하고 선량한 사람을 해치게 된다. 이는 잘 다스리는 길이 아니다.

 

7. 공공성의 확립을 위해서는 평등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상을 아무렇게나 주면 공신도 그가 할 일을 게을리 하게 되고, 형벌을 용서하면 간악한 신하가 쉽게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말 공이 있다면 비록 멀고 낮은 신분의 사람이라도 반드시 상을 주어야 하며, 정말로 허물이 있다면 비록 친하고 총애하는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신분의 상하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엄격하게 법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엄격한 법 집행과 관련된 한비자의 언급 가운데 흥미있는 점은 규정보다 더 잘해도 안 된다는 점이다. 오기와 그의 처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있다. 오기가 그의 처에게 관에 매는 끈을 보여주며 똑같은 것으로 하나 만들어주기를 부탁했다. 끈이 완성되어 받아보니 자기가 이전에 썼던 것보다 유달리 좋았다. 오기가 처에게 내가 그대에게 보여준 것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것은 유달리 좋으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었다. 처가 말하기를 사용한 재료는 같으나 제가 정성을 더하여 만들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오기는 처를 친정으로 쫓아 보냈다. 장인이 달려와 용서해줄 것을 청하자, 오기는 저희 집안은 거짓말을 못합니다.”라고 하며 용서해주기를 거절하였다. 엄격하다 못해 자신을 배려하려는 선한 동기까지도 배격하려는 이러한 법 집행의 자세는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8. 시대의 변천으로 말미암아 인과 예의 도덕 정치는 효력을 상실했다.

   옛날처럼 인구가 적고 소규모의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친하게 지내던 시절에는, 자원도 풍부하고 이기심도 적어서 서로 양보하는 일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의 시대적 조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생산력이 발달하여 서로가 이익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인이나 예 대신 법이라는 객관적이고 강제적인 규범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덕치와 법치 그리고 왕도와 패도의 갈림길에서

   한비자와 맹자의 상충하는 듯 보이는 입장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각기 정당성을 확보한다. 한비자는 군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발호하는 중신 세력과 사가 집단을 약화시키고자 했지만, 맹자는 군주를 선정으로 이끌기 위해 어진 신하를 중용하여 군주권을 견제하고자 했다. 군주권을 강화하여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려는 한비자의 입장과 군주권을 견제하여 선정으로 이끌려는 맹자의 입장은 각기 자국의 안전 도모폭정의 방지라는 합목적성을 지닌다. 이러한 두 가지 합목적성은 결코 평면적 차원에서 대립되는 것은 아니며, 각기 다른 차원에서 정당성을 지닌다.

   엄격한 신상필벌의 원칙을 적용하여 공리주의적 통치 체계를 확립하려던 한비자의 입장은 외세의 침략에 의하여 국가가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했던 한나라의 상황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제안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인한 정치에 의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복지 사회를 이룩하려는 맹자의 입장은 통치 계급에 의해 잔혹한 처벌과 수탈이 자행되던 전국 시대의 현실에서 보자면 이 또한 지극히 정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한비자의 입장과 맹자의 입장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국내적으로는 부패한 권력 구조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모습으로 개척해나가면서 국방력과 경제력을 강화해나가야 하고, 국제적으로는 강대국의 횡포를 견제하고 약소국을 지원할 수 있는 인도적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과 힘이 다투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해서, 약자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힘을 기르면서동시에 강자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방안을 함께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안이 서로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힘 기르기힘 약화시키기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요구되는, 하지만 동일한 목적을 위해 결국은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해결책들이다.

   ‘덕치법치의 관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보인다. 한비자와 맹자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평멵거인 차원에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탐욕스럽고 포악한 군주들의 내면에 가능성으로만 잠재하고 있는 측은지심을 계발하여 인정의 형태로 실현해내고자 유도하였다. 반면에 한비자가 자기 시대의 인간에게서 발견했던 것은 세를 확보하고자 연고 집단끼리 결탁 관계를 맺고 있는 중신 세력들의 정실주의, 그리고 추위와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기회만을 엿보는 백성들의 비열한 행태였다. 인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맹자의 주된 관심이 군주의 측은지심을 계발하여 선정으로 유도하는 데 있었다면, 한비자의 관심은 중신 집단과 우중들의 속성을 간파해서 이를 효율적으로 통자헤가 위해서였다. 맹자의 인성은 가능성 또는 잠재태로서 군주의 인성이지만, 한비자의 인성은 현실태로 드러나 있는 민 계층의 인성이다. 서로 충돌하는 듯이 보이는 한비자와 맹자의 인성관은 누구의 인성인가?” 그리고 왜 인성이 문제인가?” “현실적으로 드러나 있는 인간의 모습인가, 장차 계발이 가능한 잠재적 인성인가?” 라는 물음이 풀릴 때 비로소 평면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님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물론 한비자와 맹자에게는 결코 화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인성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한비자의 입장은 인성의 교화가능성을 신뢰하는 맹자의 입장과 선명하게 상충한다. 탐욕과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를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법칙이라고 보는 한비자의 입장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맹자의 입장과 상충한다. 도덕과 인의를 도구적 수단으로 간주하려는 한비자의 입장은 도덕과 인의를 궁극적 가치라고 믿는 맹자의 입장과 상충한다. 이렇게 서로 대립하는 두 입장은 단지 한비자와 맹자의 시대에만 제기되었던 특수한 대립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비자의 방략에 입각하여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의 단명은 잊을 수 없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었다. 천하를 힘으로 얻을 수는 있어도 힘만으로는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사실. ‘인의가 결여된 세상은 동물의 세계이지 인간의 세계는 아니다. 공적 세계의 합리화는 도덕을 배제한 힘의 논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역으로 힘을 무시한 도덕적 호소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공적 세계의 합리화는 힘과 탐욕이 난무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정치적·도덕적으로 원만하게 질서지울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왕충의 시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천지는 세월이 어지럽다고 하여 봄날을 없애지 않고

좋은 임금은 세상이 쇠락했다고 하여 덕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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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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