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맹자> (고전 13강)




도덕의 정치학

   맹자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으로 천하의 군주들을 설득하러 다녔다. 그러나 정치를 통한 구세라는 그의 강렬한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상주의자라는 비판만 받았다. 그가 고단한 유세 길에서 돌아와 말년에 제자들과 함께 쓴 책이 <맹자>이다. <맹자>를 읽으면 공통적으로 도덕적인 세상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고 정치와 사회와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강사는 <맹자>를 정치학 교과서로 읽고자 한다. 그래서 부제를 도덕의 정치학으로 달았다.

 

인의(仁義)

   맹자가 위나라에 도착하자, 위의 혜왕, 즉 양 혜왕은 노선생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을 가져다주려는 것이겠지요? 라고 질문한다. 이에 맹자는 국가의 지도자가 인의를 얘기해야지 어떻게 이익을 먼저 얘기하느냐고 힐문한다. 왕이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까?’라고 말하면, 대부들은 어떻게 해야 우리 가문에 이익이 될까?’라고 말할 것이며, 사와 서민들은 어떻게 해야 내 몸에 이익이 될까?’라고 말할 것이다. 위아래에서 서로 이익을 다툰다면 그 나라는 위험에 빠지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익 다툼은 필경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로 귀결되어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신하가 군주를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 우위의 시대인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짐작이 간다.

   맹자에게 인의는 천하를 아우르는 도덕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당대엔 사랑이 아니라 힘과 이익만 따지는 주장이 천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익이 세상의 중심 가치가 되면서 공자의 인의 도덕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맹자는 세상의 중심 가치를 인의로 되돌려 경제 논리와 군사 논리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논쟁하는 데 일생을 걸었다. 맹자에게 인의는 필연적 관계가 있는 본성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은 어짊이고 의는 옳음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라고 한다.

 

심성(心性)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인성에 대한 논의가 <맹자>전체의 주제는 아니다. 인의와 심()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하는 논제이다. 맹자는 고자와의 논쟁에서 물이 동서의 구별은 없을지 모르나 상하의 구분은 있다면서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이치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며, 외적인 힘과 관계없이 인간에게 본래부터 내재한 성품이 선하다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착하게 태어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선한 성품 즉 도덕 실천의 능력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본성이 왜 선하냐는 제자의 질문에 맹자는 심으로 대답한다. 이른바 인의에지 사단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 시비지심이 사람이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선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나쁜 환경을 만나 본성이 악하게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선함이 환경 때문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게 사람만이 지닌 선한 심성이 드러나지 못한다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고요한 아침의 기운과 평탄한 저녁의 기운을 잘 흡수하는 훈련을 하고, 교육을 통해서 선한 마음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맹자도 다른 유학자들처럼 후천적 교육을 매우 중시하였다. 맹자는 예의를 선을 회복하는 중요한 교육적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선한 심성을 내 안에서는 어떻게 이끌고 기를 것인가? 맹자는 양심(養心)의 방법으로 욕심을 적게 가지라고 한다. 외부 물질이나 사건, 사물에 대하여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이 선한 본성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한다. 또한, 심의 주재 아래 호연지기를 운용하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 호연지기는 그 됨됨이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며, 올곧은 도로 길러서 거기에 아무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호연지기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의감과 도를 열심히 길러 축적함으로써 생긴다. 특별한 목적이 있으면 길러지지 않으며, 억지로 조장할 수도 없다. 호연지기는 하늘이 부여해 준 마음을 잘 보존하는 일이다.

 

왕패(王覇)

   모든 사람이 선한 심성 그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왕도 사회이다. 왕도 사회는 이익이 아니라 인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 원리이고,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애와 공경이 자연스럽게 세상에 넘치는 사회이고, 어떠한 외부적 강제력도 개입되지 않는 자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선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선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세상이다.

   맹자는 도덕 정치를 통한 구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패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창조해냄으로써 역사적으로도 존재했고 현실에도 존재하는 힘의 정치를 부정하였다. 구성원들을 힘이나 이익이 아닌 마음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치라고 주장한다. 맹자는 존왕출패 즉 왕도를 존중하고 패도를 물리치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해타산과 부국강병을 앞세우는 정치를 이익을 따지지 않는 도덕 실천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덕성을 쌓아 군주의 마음 씀씀이나 일체의 정책이 인을 실천한다면 천하의 백성이 마음으로 복종해 올 것이고 마침내 진정한 천하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는 좀 과도한 낙관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맹자의 이 말은 당시 제자들도 잘 수긍하지 못한 듯하다. 공손추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신뢰만 있다면 관중의 패업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스승과 신랄한 논쟁을 벌인다. 맹자는 힘의 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일수록 어진 정치를 실현하기가 쉽다고 애기한다. 오아자가 나타나지 않은 지가 이 시기보다 더 오래 걸린 적이 없었으며, 백성들이 학정에 초췌해지기가 이 시기보다 더 심한 적이 역사상 없었다. 굶주린 자에게 먹이기 쉽고, 목마른 자가 물을 간절히 찾는 법이므로 도덕이 타락한 시대가 도덕을 되살리기 좋다고 한다.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야 새순이 돋아난다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맹자는 왕도 정치를 행하지 못한 포악한 군주에 대해 당시로선 매우 섬뜩한 경고를 날린다. 역위 즉 왕위를 바꿀 수 있다는 논의가 그 하나이다. “군주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나아가 간언하고, 반복하여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왕을 바꾸어 버릴 수 있다.”라고 대답한다. 역위는 중국 사상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나,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귀척의 경들이 왕을 바꾼 사례가 빈번하였으므로 대놓고 말을 못했을 뿐이지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후대인들이 맹자를 혁명가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맹자의 이 주장은 왕실 내의 다른 사람으로 왕위를 바꾸는 것이지 체제 변혁이나 정부의 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므로 혁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군자(君子)

   왕도 정치의 담당자는 군자이다. 군자는 사람만의 위대한 특질인 도덕적 심성을 잘 보존하는 사람이다. 군자는 맹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정치가였다. “군자가 보통 사람과 다른 까닭은 그가 사람다운 마음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으로써 마음을 지키고, 예로써 마음을 지킨다. 어진 사람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예의를 갖춘 사람은 백성들을 공경한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백성들도 항상 그를 사랑할 것이며, 백성들을 공경하는 사람은 백성들도 항상 그를 공경할 것이다.”

   군자는 도덕과 양심에 따라 정정당당한 정치를 하므로 사소한 일신의 욕망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인이다. 대인은 인의의 정치를 한다. 대인군자가 인의예지의 마음을 세상에 구현하는 사람이라면 소인은 몸의 감각적 욕망이나 이익만 따지는 사람이다.

 

맹자의 이상의 중요한 이유

   맹자는 왕도 정치를 당장 달성할 수는 없어도 군주로 하여금 힘과 이익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만 있으면, 그리하여 마침내 추상적인 도덕권력이 구체적인 정치권력을 압도함으로써 전제의 폭력성을 최소화할 수만 있으면 타협을 할 의향도 있었다. 남녀가 손을 잡는 것은 에에 어긋나지만 형수가 물에 빠져 있으면 손으로 그녀를 당겨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권도 즉 융통성이다. 한 가지만 고집하여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은 짐승이다. 천하가 물에 빠져 있으면 왕도 정치를 통해 구원을 할 일이다.

   인의도덕의 정치를 통한 왕도의 구현이라는 맹자의 구세 의식은 그가 죽은 후에,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시퍼렇게 살아서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한다. 도덕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그의 확신이 당대의 현실에서는 실패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다. 군주의 태도를 바꾸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구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덕의 정치 또한 추상적이다. 누구나 동의하는 도덕의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많은 경우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은 도덕으로 자신을 잘 포장한다. 사실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왕도 정치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할 것인가? 이상이야말로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정치는 현실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제시하는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맹자는 지극히 세속적인 현실 정치의 질곡을 보면서 마음속 스승 공자의 선명한 메시아적 의식을 계승하였다.

   갈등하는 정치 세계에서 최고 지도자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는 궁극적으로 그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의 행동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경제와 안보 등 시급한 현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도덕의 잣대를 판단 기준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결국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감





반응형

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이미지 맵

    강연/열린연단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