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와 문학 연구: 일상적 삶의 상징 생상과 유물론적 미학 (7강)




문화연구란?

'일상적 삶에서 어떻게 상징 생산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연구 (ex.유몰론적 미학)

대개의 학문은 가치중립적이지만 문화연구는 대체로 진보적인 학문이다.


대중이란 무엇인가?

이 보편계급은 절대다수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어떤 공통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


문화적 삶이란?

정치나 경제적 삶보다 근본적인 삶이다.

문화는 일상적이라는 명제에서 시작된다.


소비자본주의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등장하고 확산되면서 대중이 부상하고 

그것과 함께 대중 미디어가 점점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영화나 10대 문화를 논의하는 것은 유행을 따르기 위함보다는 

자본주의를 살아가야 하는 일반 사람들의 상상적 저항 (사회적 불만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지점들, 깊게 느껴진 욕구들의 투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중문화가 쓰레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사실은 많은 상상적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60~70년대의 아주 풍요로웠던 자본주의 시절에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현실 인식을 위해서 문화 연구가 등장했다.

but, 후기 자본주의에서 생산자 중심의 사회가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상이 자본주의를 보수하기에도, 대체 사상으로써 쓰이기에도 시대에 너무나도 뒤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문화(대중문화보다 넓은의미)

당시 새로운 사회주의적 기획의 핵심적 요소로 부상한 이유 3가지

1. 사회적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문화와 이데올로기 (즉, 정치적 경제적 영역이 아니다)

2. 문화적 차원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되는 핵심적인 차원이다.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좋은 것, 괜찮은 것.

3. 


현실의 움직이는 지배적인 힘들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는 산업자본주의에서 후기자본주의로 바뀌는 경제적 생산방식의 변화를 통해 보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그렇지만 이것만을 이용해서 설명하는 것은 맑시스트들이 세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경제적 결정론에서 문화적 맑시즘으로 전화를 하게 된다. 즉, 경제가 삶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삶을 결정한다는 판으로 바꿔버린 것.


문화연구에서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여성의 참정권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여성도 rational creature라는 생각이 다시 퍼지게 된다. 당시의 이성은 남성에게만 허용된 이성이었다. 계몽의 시대였지만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여성도 이성적인 존재다 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고 공적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공적 공간에서 공유되고 확산되고 강화되면서 결국엔 참정권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제도는 그 밑에 상징 행위의 변화로부터 인간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맑스가 상징생산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의미를 잘 보면 물질생산보다는 상징생산에 훨씬 더 많이 가 있다.


일상적 삶에서 대중들은 어떻게 상징욕구를 충족하는가?

인간은 물질적 노동을 통해 생물적 삶을 지속해가기 위한 재화를 생산하고 상징적 노동을 통해 주체. 즉 나를 생산한다.

정체성은 구체적 상황 속에서 계속적으로 새로 정의되고 새로운 상징 생산을 요구를 하고 있다.

맑스는 상징생산과 물질생산이 하나의 행위라는 것을 간파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개인의 일상적인 삶의 상징적 소통 과정)과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큰 공동체적 공간) 이 사이에 끊임없이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개인의 일상적인 삶, 저항, 욕구, 삶의 경험들이 공적 공간으로 잘 순환되는 것이 민주적인 문화다.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런 순환이 없다면 좋은 민주적 삶을 가능케하지 못한다.



유물론적 미학을 토대로 된 것이 문화연구

맑스의 미학에서 시작된다. 경제학 철학 소고에 있다.

실러의 심미적 인문주의가 매우 깊게 들어가 있다. 

[맑스는 creativity라는 말을 쓰지 않고 production이라고 했을 뿐]


미적경험이 중요하다. 미적경험은 세계를 더 강렬하고 깊은 방식으로 만나는 것. 우리는 미학이라는 것을 특수한 사람이 하는 특수한 행위로 받아들이는데 일상적인 삶에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삶의 적극적 필요로서의 미적 경험과 상징생산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내가 상징생산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박탈되고 고갈된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자기형성을 통해 자본주의의 소외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의 모색을 꾀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에서 시작된다. 

시장은 문화에 적대적이다. 즉, 자본주의적 관계가 깊어질수록 교환가치가 우리 삶을 지배할수록 문화 (자기형성의 힘, 혹은 가능성)는 약해진다. 시장이 도구적 이성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문화는 시장에 전복적이다. 시장의 질서에 지배되지 않고 내가 요구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문화가 가진 힘은 교환가치화된 것을 넘어서는 자기 형성의 힘이다. 맑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물론적 미학은 대중문화를 접근하는 몇 가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준다. 소비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인간은 상징적 창조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삶에 대해 긍정하게 한다. 과거에는 3류 소설, 연애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보고 싸구려 도피처라고 해석했었는데 이를 달리 해석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대중문화를 연구해야 된다는 애기는 하지만 방법론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계도적인 비평, 실제 분석들이 많이 나와야 된다. 시장에 파괴적인 성격만 있는 대중문화를 솎아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은 유물론적 미학의 굉장히 중요한 한 부분.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 어떻게 현실에서 재현될 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은 인정하기 싫지만 대중 미디어 시장이 엄청난 해방적 잠재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벤야민의 관점으로 정서의 구조를 정리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상징 생산과 자기 형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후 내용은 시간 부족으로 설명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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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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