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_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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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모든 이방인이여, 행복하기를! (★★★★☆)

  

  이 책과의 인연은 정말 오래되었다. 처음 니체의 실존철학을 접했을 때 알게되었고, 존경하던 형이 추천해주었고, 좋아하는 가수가 이 책을 감명깊게 읽고 이 주제를 이용하여 앨범을 만들었고, 필로소피아라는 독서모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잊을만하면 나에게 나타나주었던 이 책.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생각으로 기억의 저 너머에 갇혀있던 책을 드디어 만났다. 결과는 기대 이상. 나는 이 세상의 이방인이다. 주인공인 뫼르소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그 기질이 나에겐 있다. 세상의 이방인이란 것이 과연 부정적인가? 난 모두가 원초적으로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 교육을 통해 사회적 학습을 이루어 이방인의 기질을 벗어나고자한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가? 그것이 행복한가? 라고 한다면 좀 더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이방인적 기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 그것이 이방인이다. 소수의 이방인이 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1. 엄마의 장례식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떠올라 있었다.

바다와 마랭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언덕들 위로, 하늘에는 불그레한 빛이 가득 퍼지고 있었다. 

덕 위로 부는 바람은 여기까지 소금기 있는 냄새를 실어 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에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9)


  주인공인 뫼르소는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사회적으로 상식적인 기준의 슬픔을 보이지 않는다. 기분이 좋지는 않은 그냥 그저그런 기분.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격렬하게 슬퍼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당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내겐 정말 소중한 분. 그래서 전화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셧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화박스에서 바로 울음이 터졌다. 그러나 뒤이어 들렸던 엄마의 말씀. "너 우는거니? 왜..?" 당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채로 보급관님께 당장 나가야한다는 말을 하면서 엄마의 말씀이 계속 떠올랐다. 내가 왜 슬프냐? 우리 외할머니는 가족들 사이에선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이제는 떠나셔도 되지 않나... 계속 생명을 연장해봤자 병원비만 든다는 것이 가족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나는 병원비와 관계 없다는 입장에서 할머니를 생각한다. 나에게 따스했던 그 분의 마음. 지금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런데 내가 왜 슬퍼하냐는 말씀.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그다지 슬퍼보이지 않았던 가족들의 모습.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할머니의 사진에 고개를 숙이고 계속 생각했다. 정말로 슬픈가? 정말로 슬픈가? 정말로 슬픈가? 정말로 슬펐으나 그 슬픔은 몇시간을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휴가를 계산하고 있었고 3일 동안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했으니까. 아무래도 나의 슬픔은 3일을 채우기엔 적었나보다. 그런 후 나는 장례식장에 오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한다. 이 사람들이 정말로 슬퍼하는가? 내가 본 결과로는 대부분 아니었다. 의례적으로 오는 것일 뿐. 마음속에 작은 슬픔이 조금씩은 있더라도 슬픔이 그들을 인도하여 장례식장으로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할머니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다. 슬픔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할머니를 보낸다. 그러나 슬픔을 강요할 수 없지 않나. 심지어 아들딸들과 손자손녀들도 크게 슬퍼하지 않는 장례식.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의식에서 부조리를 느꼈다. 형식적인 것에 대한 회의. 내 장례식장엔 부조금 따위 필요 없다. 장례를 치룰 수 있는 재산은 남겨두고 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떠나는 것을 정말로 슬퍼하는 사람만 오기를. 아무도 없다면 아무도 오지 않기를. 그것이 죽은 나에 대한 마지막 존중이 아닐까.


2. 결혼과 사랑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p.52)


  사랑 없는 결혼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라고 한다면 가능은 하겠지 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 할거다. 애초에 사랑 없는 결혼도 너무 부조리하지 않은가. 책에서 이 부분이 가장 특이했는데 왜냐하면 부조리한 것들을 지적하는건 주로 뫼르소 였는데 여기선 마리가 지적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결혼의 부조리함을 뫼르소가 지적한다. 그것은 있으나 마나한 중요치 않은 것이다. 맞다 결혼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랑은 어떠한가? 사랑은 중요하다. 그리고 마리는 사랑을 강조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사랑하지 않는 마리와 결혼을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고 한다. 마리로 인해 사랑이 대화에서 나타나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치 않은 것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실존하는 것이 사랑과는 상관 없는 것인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실존에 기여한다. 그러나 남을 사랑하는 것은 실존이 완성되었을 때 가능한 행위다. 그렇기에 인간은 불완전한 사랑을 하게 되고 그것을 뫼르소는 회피한 것 같다. 사랑이란 것이 명확할 수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서 안타깝다. 그러나 현실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사랑을 나는 믿고 따를 의향이 있다. 그런 부분은 아마 내가 이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렇게 행동하냐고 한다면...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한다.


3. 위선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중략)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잛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p.69)


  결과적으로 충동적인 살인. 물론 용인되어서는 절대 안 될 행위이다. 그러나 어떤 인과로 작용된 행동인지는 이해가 된다. 엄마의 장례식이라는 기저에 깔려있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겹쳐지는 기분 나쁜 햇빛. 그로 인한 감정이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까지 촉발한 것이다.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어본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역시나 있다. 밤을 새어 가면서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나는 지쳐있었다. 그리고 내가 챙기지 못한 것이 있으니 챙겨달라고 미리 친구에게 부탁했다. 잠을 자지도 못한채로 버티고 있던 나에게 빌린 돈을 빨리 갚으라는 독촉 문자가 전해졌다. 돈의 액수는 자그마치 4천원과 1만원. 평소 채무관리 철저하게 하라는 나에게 장난이라도 치고싶었던걸까 계속 이어지는 독촉이 나를 자극하였다. 그래서 전화를 해보니 노래를 부르고 신나있는 친구들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부탁한 것을 챙겨왔냐는 물음에 당연스레 아니라고 대답하고 까먹었다는 대답과 그 옆에서 안 보였다는 대답이 공존했다. 그 순간 짜증과 한숨을 동반한다. 그리고 옆에서 이어지는 빚 독촉. 화가 몰아치고 나는 옆에서 독촉하고 시끄러운 친구를 바꾸라고했고 받자마자 폭언을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 친구의 반응에도 나는 거리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온갖 욕을 지껄인다. 1분인가 2분인가... 시원하게 욕을 하니 정신이 돌아왔고 아무튼 알겠으니 끊으라고 하였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누군가는 사람이라면 이성적으로 행동해야지 라고 말은 하지만 살다보면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분명히 존재하는 이것을 애써 외면할 것인가? 나는 이성적이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니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라고? 위선자다. 사람을 가려 사귀면 안된다고 하지만 내가 반드시 가리는 사람이 위선자다. 난 사람의 눈을 잘 믿는 편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많은 눈을 봐왔고 그 눈이 말하는 많은 것을 느껴왔다. 위선자의 눈은 항상 회색 빛깔이 느껴진다. 난 그들의 눈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그들은 보통 이러하다. 교과서적인 말, 조언, 행동. 그렇다고 교과서적으로 행동하는가? 그러하면 언행일치라 위선자가 아니지만 내가 보아온 사람들은 교과서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이런 위선자들이 자신이 위선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더욱 내게 구토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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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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