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_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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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세상은 지옥이다 (★★★☆☆)


  글에 젖는다는 것이 이런걸까? 봄밤을 읽으면서 나는 젖었다. 묘사가 디테일하여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했다. 종우가 그러더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그 부분의 묘사와 종우의 행동은 지금도 내 심장을 쥐어 짜는듯 하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수환과 이혼녀에 알콜중독자인 영경. 둘이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과 삶은 건강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지옥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런 지옥 속에서 둘은 서로만을 기대고 결국 둘은 같이 떠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내 사랑의 가치관에 하나 적어둔다. 마지막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연애를 안 할수록 내 환상은 깊어지나보다... 그런데 정말 만나고싶다. 내 일생을 다 걸고 싶은 사람. 독신주의의 이유가 늘어간다...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겪어보지 않은 것을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는 위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느껴본 아픔보다 그들의 아픔이 더 쓰라릴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이 지옥을 살면서 나의 아픔을 느끼는 감각기관은 점점 발달한다. 언젠가는 영경과 수환의 아픔을 뼈저리게 공감할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나는 욕심이 많다. 그렇기에 항상 바쁘게 살고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한다. 다른 많은 것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하루하루를 느끼면서 살고싶은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도 옛날보단 낫다. 요즘엔 휴식이란걸 계획에 넣어두니 의도적으로 쉴 시간을 마련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과거엔 쉬는 시간을 비효율적인 시간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많이 달라졌지... 봄밤이 사실 김수영의 봄밤이라는 시에서 착안되어 쓰여진 소설이다. 김수영 시인의 봄밤을 읽으면 영경과 수환의 삶이 느껴진다. 그들과 바쁜 현대인에게 이 시를 권해본다.



봄밤(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리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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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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