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_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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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세상의 이면에 대해 치우치지 않은 태도를 견지한다. (★★★☆☆)


  신철규 시인은 11년에 등단한 1980년생이다. 우선 나와 같은 원숭이 띠동갑이라는 사실에 반가웠다. 그래서 나의 나이에 한 절기를 더 숨 쉰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까? 라는 물음을 갖고 시집을 맞이하게 되었다. 연륜이란 것이 이것일까? 세상을 보는 중립적인 눈.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게 바라보려는 그의 노력과 태도가 느껴졌다. 부조리한 것에도 그는 담담한 어조로 '~까' 의 표현을 쓰며 결정을 내리지 않는 신중함을 보인다. 그는 '천국과 지옥', '밤', '등' 과 같은 표현을 자주 쓰고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총합의 상상력'을 잘 끌어낸다. 그리고 이 표현들과 방법은 세상의 이면을 세밀하게 그리게 하고, 그것에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한다.  


1. 계몽의 유한성


세계는 피의 정원

권총을 장미로 장식한다고 해서 

총구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중략)

봄의 야윈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다

'권총과 장미' 중에서


  우리는 피의 정원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의 비열함에 갇혀 살아간다. 세상의 비열함에 우리는 대적할 수 있는가? 시에서는 대적할 수 있지만 파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어째서 장미가 모였는데 아름다운 정원이 아닌 피의 정원이 탄생할까? 정원을 피로 물들게 한 장미를 장미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피로 물들게 한 장미들을 없애버린다면 아름다운 정원은 구현 가능한가? 세상의 근원적인 물음이 이 짧은 시에 담겨있다. 그리고 나는 이 고민에 대해 정리하고 나의 행동 지침으로 삼고싶다. 어떤 결론에 다다를까? 이 시에서의 화자는 관자놀이에 심장이 멈출 때 까지 권총을 쏴갈긴다. 그랬을 때 우리의 장미가 피어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시들고 검게 타들어간다. 계몽의 유한성이다. 평생을 권총으로 쏴갈길 자신이 없다면 자신을 장미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내 관자놀이에 권총을 쏴갈기면서 살아가겠다.


2. 권위


어젯밤 꿈속에서 당신은 모자를 쓰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당신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모자만 떠 있었습니다

당신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모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갔군요


당신이 써놓은 메모를 찢어서 모자에 넣습니다

다시 손을 넣어 꺼내보면 나의 심장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궁중에 뜬 모자가 걸어갑니다

'벌거벗은 모자' 중에서


  우리네 세상엔 권위주의가 권위와 달리 무차별하게 나타난다. 권위를 내려놓으면 사람들 앞에 서기 부끄러운 세상. 그곳이 우리네 세상이라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맞다. 정말로 주변에 권위를 내려놓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권위인 나이를 내려놓는 편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왜 나이에 안 맞게 행동을 하냐는 듯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권위를 불편해하면서 내려놓은 상대에게 불편해 한다니... 이것이 인간의 사회성이 내려주는 편견인가. 다행이다 난 틀에 박히지 않아서. 나는 권위로써 나이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데 권위를 놓으려는 나에게 사람들은 또 다른 권위로 불편함을 조성한다. 나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진심은 그만큼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참 위선적인 사람들...


3. 감정의 민낯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물의 중력' 중에서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다. JTBC의 손석희 사장님이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이 표현이 가진 명성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보거나 상상해 본 행동을 문자로 푸짐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표현을 느껴보고 행동해본 적이 있을까? 이 시에서처럼 밤에 많이 그런 것 같다. 밤이 주는 나만의 세상이라는 느낌 때문에 좀 더 감정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낮에 놓쳤던 내 감정의 민낯을 밤에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킨다. 지금의 나는 그런 순간들이 모인 집합체니까. 문득 내가 쓴 표현에서 의문이 든다. 나는 성장한건가 변화한건가. 이런 의문이 내게 성장했다는 말만을 적지 않고 변화란 단어를 쓰게 했다. 누군 나보고 아이같아 졌다고 한다. 퇴화한건가? 누군 나보고 생각이 깊다고 한다. 성장한건가? 사람마다 사람을 보는 잣대가 다르니 난 누구에겐 퇴화했고 누구에겐 성장했나보다. 그럼 내 기준에서 나는 어떤 변화를 했을까? 난 성장한거다.


4. 눈맞춤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유빙' 중에서


  최초의 입맞춤. 다들 입맞춤을 많이 기억한다. 하지만 난 최초의 눈맞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눈은 마음을 투영한다고들 말하지 않는가? 입맞춤은 거짓이 될 수 있지만 눈맞춤은 솔직하다. 그래서 난 눈맞춤을 더 좋아하나보다. 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군대를 갔다오고서 나의 위선적인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는지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다시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하고싶다. 그리고 그런 당당한 사람으로 돌아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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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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