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감정의 철학_나카지마 요시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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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차별감정의 철학」을 읽고서..



차별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차별감정이란?

차별감정은 타인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공격충동을 야기하는 감정이다. 이를 야기하는 우리의 내면의 감정은 크게 8가지고, 저자는 이 감정들을 부정적인 감정(불쾌, 경멸, 혐오, 공포)과 긍정적인 감정(자부심, 자존심, 귀속의식, 향상심)으로 나누어서 제시한다. 이 감정들을 차별감정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거대한 나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나무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차별감정의 나무' 다. 뿌리는 '공포' , 밑둥은 '혐오' , 윗둥은 '경멸', 가지는 '불쾌' 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분은 위에서 아래로, 하늘에서 땅으로 향할수록 근원적이고 관념적인 감정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감정은 어디에 있는가? 나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물, 햇빛, 이산화탄소 등이 있다. 각각의 요소들은 자연에서 생산적이고 중요한 요소이지만, 차별감정의 나무를 키울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들과 특징이 유사하다. 감정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차별감정이 자라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별감정의 원인은?

차별감정을 야기하는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다양한 주장을 확인해보자. 프로이트는 『문화에서의 불안』에서 차별이 에로스에 버금가는 인간 존재의 자연적 본성이라고 언급한다. 생물학에서는 고등한 생물일수록 집단이나 개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개인은 차별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심지어 구조적으로 차별감정을 조장하기도 한다. 서구형 근대사회 구조는 노력만능주의를 근간에 두고 있다. 노력만능주의는 차이의 체계를 질서화 한다. 이러한 사회질서 속에서 자란 인간은 상-하, 우-열 등의 차이 체계를 학습하고, 하위 혹은 열위에 속하기를 두려워하고 부정하게 느낀다. 따라서 인간은 차별감정을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낌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이를 공고히 하는 시스템 하에 살고 있다.


차별감정의 문제점

차별감정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야기한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평범(정상상태)하길 원한다. 이는 차이의 체계가 조성된 세상에서 무한한 투쟁 구조를 고착화 한다. 차이는 무한히 생겨나고 평범하려고 무한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마음이 항상 불편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또한,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슬로건인 '차별하지 말라' 는 사회적 합의는 오히려 차별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내적현실과의 갈등을 야기한다. 이는 거짓으로 불편한 마음을 달래는 자기 기만의 연속 속에서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차별감정의 순기능

구제불능으로 쓰여진 차별감정은 사실 사회적 순기능을 지닌다. 차별을 통해 무한하게 서로를 나누어 바라본다. 이는 다양한 세상을 창조하여 문화를 발전시키는 이점이 있다. 결국 다양한 문화와 문명은 차별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던 것이다. 차별이라는 악의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 들이는 개념인 우정, 사랑, 가족 등은 모두 '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 가능한 개념이다. 우리 모두가 동일하다면 새로운 관념이 발생하지 않고, 서로 나뉘어지지 않고, 아주 단순하고, 고등하지 못한 세상이 구축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와 같은 문화의 성장과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는 차별감정의 순기능을 간과할 수 없다.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

위와 같은 장단점의 사이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다만, 차별을 인지하고 이를 의식개혁을 하기 위한 시도 중에 대부분 마녀재판과 같은 야만적인 실수를 반복했고, 대다수의 편승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고 힘에 따랐다. 그동안 해결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한편으로는 논리적인 문제도 있었다.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 피차별자들이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법론은 모두의 수긍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를 재생산하는 과오를 되풀이 했었다.


대안

   문화가 융성한 세상에서 결국에는 약자와 강자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뛰어난 사람은 부채의식(죄의식)을 가지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차별에 대한 '철폐vs순응' 이 아니라, 자기비판 정신과 섬세한 정신을 함양하려는 노력이 차별 문제를 최소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뛰어난 사람은 최대한 많은 (의견, 신조, 신분, 경우, 입장)과 소통하여 차별의 실태를 직시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차별 문제를 좀 더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보는 눈을 바꾸기 위해선 자신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인지, 고지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인지를 인지해야 한다. 이는 자신이 쓰는 성실성의 방향을 인지하고 타인을 바라볼 때의 편협한 생각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끝으로, '타인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을 경계해야 한다. 약자는 타인을 공격하지 못하고 차별 문제에 무방비 상태지만, 강자는 타인을 인지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무심결에 공격할 수 있다. 이를 끊임없이 인지하고 사는 것이 모든 약자들과 평범한 세상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항심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변화가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방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해법이 역차별 문제를 일으켰고, 이 대안 한 가지로 모든 차별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함을 고려한다면 이 보다 나은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

조선시대에 비추어 우리나라가 어떤 차별 문제로 현재까지 갈등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성차별이다. 아무래도 최근 페미니즘 운동이 시사되고 정부 또한 이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차별문제 외에도 다양한 차별문제가 우리나라에 만연하다. 조선시대 때의 계급제도, 남성중심사회, 관료제도 등의 사회구조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인권문제를 남겨 놓았다. 갑-을, 장애인-비장애인, 남성-여성...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혼재되어 있으나 저자의 대안에 따르면 한 가지 방법론으로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이를 개인 하나하나가 변하려고 노력하고 시도한다면 분명히 창대한 결과가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기대한다.


여성문제

   다양한 차별문제 중 최근 우리나라에서 대두되고 있는 여성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현재 여성차별문제는 해결 속도에 진전이 없다. 이처럼 문제해결에 진전이 없는 이유는 부채의식이 없는 남성들과 본인들의 이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여성들 때문이다. 남성들은 그동안의 차별행동에 역사성이 있어 이를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그들의 문제를 자각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밀레니얼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비교적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 왔다. 그리고 대중매체로부터 남성의 배려(남성이 도로쪽으로 걷는 것이,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내야 좋은 남자라는 이미지 메이킹)를 우상화 해왔다. 그런데 여성계에선 그동안 여성들이(특히 젊은 여성들이 발화자일 때)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의 남성들은 그들이 학습한대로 자연스러운 행동을 했고 여성들에겐 되려 배려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을 사회문제로 지적받는 상황에서 공감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동안의 행위는 지금 공론화되고 있는 문제행위와 괴리된다며 책임회피를 하고 생각을 중단하는 남성들 때문에 여성차별 문제는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다.

   남성들만이 이 문제를 고착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도 자가당착의 오류를 범하며 여성해방운동의 방향성을 잃게 하고 있다. 여성들은 그동안 여성으로서 받았던 이권(군 면제, 데이트 비용 전가 등)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노심초사하여 말하건대, 이러한 이권들을 '대부분' 의 여성들이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든 위에 남성들의 경우든 이러한 불합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누구의 책임에 경중을 두기 보다는 해결되지 않는 원인만을 드러내는 것이 차후 서로가 동의하는 세상을 만들기에 적절하다.] 하지만 여성이 이권을 버리는 것도 매우 큰 딜레마에 막힌다. 이미 사회적으로 여성은 약자의 위치에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현재의 이권도 포기하라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결국 여성은 이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남성들은 자신들의 배려가 의무인 것 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반감을 가지니 이는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이다.

   사회는 어떠한가? 아직 남녀평등이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결국 현재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적절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어렵다. 아직도 남녀평등을 위한 길 어떠한 것인지 헤매이며 보여주기식 임시방편만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 인권위에서 환경미화원의 체력시험 기준을 남녀의 차별없이 동등하게 두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의 사회참여를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모두 결과적 평등보다는 절차적 평등이 실현되길 원하는데 권력을 쥐고 있는 곳에서는 그런 사정은 크게 관심이 없고 현재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니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대충 납땜하는 구색이다. 결국 사회보다는 우리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

   여성문제는 지금 정권이 만들려는 사회의 흐름을 계속 유지시킨다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남성이 강자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접근한다면 그들도 자연스레 이권을 놓는 행위에 동의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성장만을 바라보고 몸을 키워나갔다. 본인을 아끼지 않고 국가 혹은 기업의 성장을 위한 행동은 남성들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사회의 발전 방향은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헤게모니다. 자신을 아끼고 인간적인 교류를 하는 것에 있어서는 여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미래에 세계의 모든 나라가 성장을 멈추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곳에서 여성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포진될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남성들이 강자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강자-약자는 필연적이다.


마치며..

최근 사회문제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여성차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이 책을 읽고 토론에 참여했었다. 토론에서는 좋은 내용을 다양하게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다. 가장 대립될 수 있었던 여성문제와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토론은 서로의 기분을 해칠까봐 말을 아끼며 진행되었다. 왜 우리가 필요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기분이 상할까? 현실에 대한 토론과 이권을 포기하는 문제에 우리는 과하게 민감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사회는 자그마한 이권조차 놓치기 두려워 하는 인간을 만들었다. 이권을 내려놓지 못하겠다면 죄의식은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나 또한 부채의식을 지니며 차별감정의 나무가 초라해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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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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