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_안톤 체호프


짧은 평: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에서의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그것을 갈구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의 처음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단순한 호기심.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둘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 규범이 그들을 방해하고 그들의 끝은...


1. 호기심


그 사람과 결혼할 때 저는 스무살이었어요.

저는 호기심이 강했고 더 나은 뭔가를 바랐죠.

그래, 다른 삶이 있을거야 하고.

늘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제대로......, 제대로요,

호기심이 저를 매일 괴롭혔어요. (p.117)


구로프는 이내 듣는 일이 지루해졌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갑작스러운 참회,

그리고 그 순진한 말투가 그를 짜증나게 했다. (p.118)


  안나와 구로프가 처음 만난 날 밤을 함께 한 후의 일이다. 안나는 자신의 위선 때문에 불결함을 느끼고, 구로프는 그녀의 행동을 불편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둘의 첫만남에 사랑은 없었다. 안나의 말처럼 서로의 호기심이 만남을 이끌었고 그 직후의 둘은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다.


2. 전조


그는 그녀의 움직이지 않는, 겁에 질린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그녀는 점차 평정을 되찾더니 다시 쾌활해졌다. (p.118)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도 잊은 채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아마도 야경꾼인 듯한 어떤 사람이 다가와 그들을 잠시 쳐다보고는 사라졌다.

이 사소한 일도 그는 신비롭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p.120) 


  안나는 계속 구로프에게 묻는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며 천박한 여자로 여기지는 않는지. 그리고 구로프는 매번 그녀가 안심할 수 있게 표현해준다. 그것이 안나의 정교도인으로서의 도덕적 신념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구로프는 주변의 외물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사랑을 할 때 우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 구로프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3. 후회&망상


자신의 인생에 또 하나의 진기한 사건이 있었고, 그것도 이미 끝나 이제 추억 속에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음이 흔들리고 쓸쓸했으며 가벼운 후회를 했다.

그가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이 젊은 여인은 그와 함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했다.

그가 그녀에게 친절했고 또 애정을 보였지만, 그래도 그의 태도에는, 그의 목소리와 거친 오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p.123)


  구로프가 안나와 헤어지고 들었던 생각이다. '사랑할 때 진심을 다해 사랑한 사람이 후회도 없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구로프는 사랑의 마음이 들게 한 여인에게 그동안 자신이 저급한 인종이라고 표현하던 여자들에게 하던 것 처럼 거짓으로 행동했다.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고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는 한참이나 방 안을 서성거리며 그녀를 떠올리고 미소 짓곤 했다.

그러나 회상은 곧 공상으로 바뀌어 과거의 일이 상상 속에서 미래의 일로 혼동되곤 하였다.

안나 세르게예브나가 꿈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림자처럼 어디든 그를 따라다녔고 사로잡았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그의 앞에 생생하게 보였다.

이전보다 더 아름다웠고 젊었으며 사랑스러웠다. (p.126)


  구로프의 후회는 망상으로 전환된다. 그 당시의 기억에 좀 더 상상이 덧붙고 그녀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과정도 사랑에 빠지면 겪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안 보는 동안 상상하고 콩깍지가 씌인다.


4. 결말


도대체 왜 이 여자는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가?

나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여자들은 내 본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놓은, 평생 간절히 원하던 사람으로 나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차리고도 여전히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과 사귀고 가까워지고 헤어졌지만, 한 번도 그들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은 없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가 세기 시작한 지금,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p.141)


  안타깝게도 구로프는 다른 여자들이 자신을 보았던 것 처럼 자신도 안나를 망상과 함께 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말한 것 처럼 구로프는 훗날 실수를 알아차리고도 사랑하지만 행복하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5. 맺음말

  글은 구로프와 안나가 서로의 사회적인 압박 속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것이 열린 결말 같지만, 앞서 말한 것 처럼 둘이 행복하지 않게 된다는 결말이 복선으로 깔려있다. 구로프는 이전 여자들과 다른 안나의 신선함에 반했다.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다른 여자들처럼 사랑하지만 행복하지 않게 되는 결말(4번 참고)에 다다를 것이다. 이 주장에 근거를 덧붙이자면 구로프는 이미 자신의 공상으로 기억을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구로프와 같은 한량은 과거의 여자들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식고 다시 보니 아니었더라 라는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안나와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안나의 경우에도 정교도인으로서의 도덕적 신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사회가 그들을 위해 도덕적 속박에서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고 안나가 독립적으로 그 신념에서 해방될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둘의 관계는 배드 엔딩이지만 처음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둘의 사랑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볼 수 있어서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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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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