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_이진경 정리노트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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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유명론과 경험주의(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제론과 유명론

근대철학의 다음 장은 경험주의다. 경험주의의 사고방식은 "인식주체의 경험이 지식의 연원이자 진리의 근거" 이다. 유명론은 nominalism이다. 명목론이라고도 불린다. '오직 이름일 뿐' 이란 뜻이다. '보편적인 것' (the general)은 오직 이름뿐이란 주장이다. 유명론은 보편적인 것(예컨대 '인간' )은 오직 이름일 분이라고 주장한다. 실재론(realism)은 보편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여러 개인들 속에 존재하는 공통된 특징을 묶어서 가리키는 이름임을 깨닫는 것이 유명론이다.


보편 논쟁

보편 개념은 단지 이름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유명론이고,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 실재론이다. 실재론적 입장은 플라톤 이래 주된 흐름이었다. 유명론의 시작은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의 제자 포르피리오스(Porphyrios)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해설하면서 "유類(무리)나 종種(씨)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지, 나아가서 이것이 존재한다면 정신적인 것인지 물질적인 것인지, 또는 감각적인 사물과 별개의 것인지, 아니면 감각적인 존재에 부수적인 것인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이것은 굉장히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데, 나는 문제 제기만 하고 정리는 못하겠다" . 중세 중반기까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다시 말해 실재론이 지배적인 가운데, 유명론을 주장했다가는 자칫 신이란 존재를 '오직 이름뿐인 것' 으로 간주할 위험마저 있어 유명론은 자리를 펴기 어려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이데아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물 속에 들어 있다(형상)고 한다. 이런 사고를 빌려 '스콜라철학' 이 탄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대부분 신학자들은 실재론자들에 해당되는데, 신(보편자)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며, 개별자들은 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죽으면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라틴어로 universalis ante res, 즉 "보편이 앞선다" 라고 말한다. 안셀무스는 신의 본체론적인 증명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신은 '완전한 존재' 다. 존재라는 속성이 없다면 그건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존재는 존재를 속성으로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를 속성으로 갖는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고 논증한다. 이런 방식으로 신을 증명하는 것을 '본체론적 증명' (ontological proof 혹은 '존재론적 증명' )이라고 한다. 로스켈리누스는 유명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하다가 매우 고생한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예컨대 '흰 것' (보편)이 있다고 하는 것은 흰 박스나 흰 테이블 같은 개개의 개체가 있는 것이지, 흰 박스나 흰 테이블 등과는 별도로 '흰 것' 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이런 견해를 '신' 과 '삼위일체' 에까지 적용한다. 그는 "신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세 가지 신적 존재―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결합인데, 사실은 이 세 가지 신적 존재의 공통된 특징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교황청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그 이후 유명론은 오랫동안 크게 대두하지 못한다. 아벨라르두스는 원래 실재론자인 기욤과 유명론자인 로스켈리누스 모두에게서 배웠다. '인간다움' 이 실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다움' 이란 없다는 주장도 지나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universalis in rebus, 즉 "보편은 개별 속에 존재한다" 고 말한다. 이때 보편자는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개념일 뿌닝며, 개별적인 사물이 갖는 특이한 요인을 생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즉 그것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생략과 추상에 의해 성립된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분명 유명론자에 속한다.


아퀴나스와 오컴

중세 후기에 유명론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들이 다시 나타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컴이 두 개의 대비되는 입장을 대표한다. 유명론과 관계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은 '중용적 실재론' 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오컴은 유명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현실과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안셀무스의 '본체론적인 증명' 을 비판한다. 그것은 개념적인 상태의 증명일 뿐, 신을 실제적이고 자연적인 상태에서 증명한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다섯 가지 방법으로 증명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부동(不動)의 동자(動者)' (움직이지 않는 운동자)를 이용한 것이다. "모든 피조물, 예컨대 사람이 인간이 존재하려면 부모도 있고 그 위에 또 부모가 있고... 이런 식으로 거슬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다른 것을 만들어낸 원인이지만 스스로는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이 최초의 원인이 바로 신이다." 이성의 진리와 종교적 진리는 신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신의 진리' 가 중요해지고, 이 '신의 진리' 를 이성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철학자들의 과업이 된다. "믿기 위해선 이해하라!" 는 슬로건이 나오며, 철학은 이런 과업에 봉사할 임무, 즉 '신학의 시녀' 라는 임무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게 된다. 이것이 스콜라철학의 기본 모토이다. 재료, 그리고 신이 만들어준 구조·형상 같은 것들이 모든 개체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유명론과 실재론에 대해 이른바 '중용적 실재론' 이라는 입장에 서는 것도 이와 연관돼 있다. 그에 따르면 '보편적인 것' 은 형상으로서 개별 내부에 존재한다고 한다. 한편 추상 개념, 예를 들어 '인간다움' 이라는 개념은 여러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속성을 추출해 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개별적인 사람들보다 먼저 존재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보편은 개별 '뒤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이 갖고 있는 관념, 즉 '이데아' 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말한다. 신이 갖는 관념은 모든 개별적인 사물이 존재하기 '전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퀴나스는 세 가지 얘기를 다 하는 셈이다. "형상으로서 보편은 개별 속에 존재한다. 또 추상적 개념으로서 보편은 개별 뒤에 존재한다. 그리고 신의 관념으로서 보편은 개별보다 먼저 존재한다." 간단히 말하면 보편 개념만 이름이고, 다른 보편자는 실재한다는 실재론의 입장이다. 

반대로 윌리엄 오컴은 당시 유명론자로 가장 유명했다. 그는 "보편 개념은 기호다. 이 기호에 상응하는 실재는 없다. 사물에 앞서가는 보편자는 신의 정신 속에도 없다" 고 한다. 예를 들어서 추상적인 '언제' '어디'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만이 실재한다고 한다. 1, 2, 3 같은 숫자들은 실재하지만 일반적인 '수' 라는 것은 없다. 결국 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이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컴은 이런 논리가 기독교 교리에까지 적용된다면, 신학적 교의 자체가 붕괴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주장을 오직 이성이 작용하는 영역에만 한정시켜 버렸다. 이성과 달리 "믿음은 불합리한 것이고" (credo quia absurdum), 믿음의 영역인 신학에는 앞서와 같은 이성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데 "신에 대한 경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에 대한 고유한 지식 역시 불가능하며, 따라서 믿음은 불합리하다" 고 한다. 오컴은 신학을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떼어내고, 철학과 신학을 분리시킨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학과 이성이란 영역이 서로 별개라면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그는 교황에게 잡혀 투옥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해서, 당시 교황과 다투고 있던 바이에른 주의 루드비히 왕 밑에서 은신한다. 오컴은 이때 "당신이 칼로써 나를 지켜주면 나는 펜으로써 당신을 지켜주겠다" 고 하여, 또 하나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유명론과 경험주의

유명론은 이데아와 같은 관념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관념론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별 사실들을 강조하고 그것이 원리에서 벗어난다면 벗어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인식하자는 견해가 생겨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유명론적 전통 속에서이다. 유명론이 어떤 관념이나 보편원리로써 전체를 다 설명하려는 경향에 대해 해체적이고 비판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유명론이 점점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은 경험이나 경험적 지식에 대한 지적인 개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접하고 경험하는 구체적 사물, 구체적 지식에 대한 개방이다. 이런 생각이 '경험주의' 라고 부르는 흐름에 그대로 이어진다.


로크: 유명론과 근대철학


로크의 입지점

신에게서 독립한 주체, 그래서 존재·인식·가치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던 근대적 주체가 로크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지반이 된다. 진리라는 인식의 목표 역시 마찬가지다. 로크는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허구적인 원리나 개념, 사고 등을 제거하는 '청소부' 로서의 역할을 자임한다. 경험과 관찰이야말로 과학에 이르는 왕도. 이런 사고방식이 흔히 '경험주의' 라고 부르는 것이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미철학에선 주류를 이루는 입장이다. 다만, 데카르트는 경험과 관찰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이성에 내재해 있는 본유관념과 그것에 의거한 연역적인(예컨대 수학적인)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크의 생각은 경험이나 관찰에 의하지 않은 지식이나 개념, 예컨대 신학적인 우주론은 오히려 올바른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 지식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역시 마찬가지다. 


'본유관념' 없는 진리를 위하여

불이란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본유관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이 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경험함으로써 배운 것이다. 만약 데카르트처럼 경험 이전에 이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백지' (tabula rasa) 일 것이라고 한다. '완전한 개념' 은 신이 준 것이 아니며, 타고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경험에서 추출된 것이며, 불완전한 모습들을 관찰하여 불완전성을 제거하고 완전한 모습을 그려낸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편은 단지 개별에서 추상된 것이며, 그 공통된 특징에 붙인 이른일 뿐이라는 유명론의 논지를 따라간다. 더 나아가 로크는 모든 보편 개념(일반 개념)은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것이며, 다만 이름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한다. 그는 단순관념복합관념을 나누는데, 단순관념은 저 누런 금속을 보고 '금'이라고 판단하거나 '노랗다'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복합관념은 우리의 사고가 이 단순관념들을 결합해서 만든다. '금'이라는 단순관념과 '산'이라는 단순관념을 결합해 '황금산' 이란 고나념을 만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단순관념은 사물에 의해 자극되어 만들어진다. 반면 복합관념은 단순관념들을 오성(understanding)이 결합해서 만든다. '신'이나 '인간'과 같은 보편 개념은 모두 복합관념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오성(깨닫는 능력)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명목적인 것이다. 


로크의 딜레마

하나는 실체에 관한 것, 다른 하나는 진리에 관한 것이다. 로크는 '빨갛다' '노랗다' 같은 단순관념을 야기하는 것을 '물질적 실체' 라고 한다. 이 물질적 실체가 우리(주체)의 감각을 자극해서 단순관념이 생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물질적 실체는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든 불변인 채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감각적 경험 외부에 있는 것이다. 또한 언제나 같은 실체로 인식해야 한다. 인식의 불변적인 주체를 로크는 또 하나의 실체라고 한다. 이건 '정신적 실체' 라고 한다.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는 근대철학 안에서 로크처럼 진리로서의 과학을 추구하려 하는 한, 물질적 실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결국 데카르트 비판이었던 '실체' 같은 보편 개념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에서 시작해, '실체' 가 없어선 안 된다며 두 개의 실체(물질과 정신)가 있다는 '반유명론적인' 주장으로 되돌아 왔다. 

진리에 관한 것은 '제1성질' 에 관한 것이다. 이 방의 온도는 그걸 느끼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성질이지만, 태양의 숫자는 주체와 상관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라고 로크는 말한다. 이처럼 주체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성질을 그는 '제2성질' 이라고 하고, 주체에 상관없는 성질,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기는 성질을 '제1성질' 이라고 한다. 제2성질은 경험 안에 있지만, 제1성질은 물체 자체에 속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리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제1성질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식과 대상은 일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인 진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제1성질은 어떻게 해서 진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걸까? 로크에 따르면, 그건 사물에 속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물들은 그런 성질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1성질은 사물이 갖는 일종의 '본유성질' (타고난 성질)인 셈이다. 로크는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하며 주체로부터 본유관념을 떼어낸다. 그러나 진리가 가능하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그는 그 성질(타고난 성질)을 사물들에게 돌려준다. 결국 다시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유명론의 근대화

중세에 유명론은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제출되었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라는 '존재론적' 성격의 사상이었다. 로크에 이르러 유명론은 근대적 문제설정에 포선된다. 인식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해 있고, "이 주체가 진리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관찰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명론은 '인식론' 적 성격의 사상이 된다. 로크의 철학은 근대화된 유명론이다. 다시 말하면 경험주의란 바로 근대화된 유명론이다. 그러나 실체와 제1성질이 유명론의 사고방식과 정면에서 충돌한다. 이는 결국 근대적 문제설정(특히 과학주의)과 유명론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보여준다.


버클리: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버클리는 로크의 비판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입론을 세운다. 첫째,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정신)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실체' 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한다. 즉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체는 '예외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버클리는 이런 예외조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둘째는 '제1성질' 에 관한 비판이다. 로크는 대상의 성질일나 모두 인식주체가 경험한 것이고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제1성질만은 예외로 둔다. 그러나 버클리는 제1성질만 유독 물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가 보기엔 경험되지 않는 성질이란 알 수 없는 성질이다. 알 수 없는 성질이 있다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말처럼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비판을 통해 버클리가 도달한 곳은 근대철학의 밑바닥이다. 물질적 실체를 가정하면, 이것이 지식과 일치하는가라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물질적 실체' , 즉 '물질' 이란 개념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한다. 버클리는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뿐이다." 라고 말한다. 버클리가 이토록 과감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주교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물질을 부정하자마자 과학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로크로 하여금 '예외' 들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버클리에게 물었다. "당신 부인은 지금 안 보이는데(지각되지 않는데), 그럼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생각 끝에 버클리가 말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지각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사람은 존재하고 있다." 정말 주교다운 대답이다.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유명론은 자신의 반대물(실재론)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다른 한편 버클리는 '물질' 이란 실체를 제거하지만, 정신에 대해선 그렇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각하는 정신이 없다면 대체 경험이 어떻게 가능하겠으며, 지각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결국 '정신' 이란 실체 앞에서 버클리는 유명론에 일종의 유보조항을 달아두고 있는 셈이다. 자기가 비판했던 로크처럼. 요약하자면, 버클리의 주장은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나아간 것이다. 중세의 유명론은 실재론에 대항하는, 반관념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반면 버클리에 와서 유명론은 정반대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는 로크가 남겨두었던 물질이란 실체를 제거한다. 


흄: 근대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흄의 철학은 '회의주의' 라고 불려진다. 그는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 고 한다. '경험적 인간학' 을 구성하려고 한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차적 위치를 차지함은 물론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에는 일곱 가지 관계가 있다. 이 중 '유사관계' '양적 관계' '질적 관계(성질의 등급)' '반대관계' 는 확실하지만, '동일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 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흄은 인과관계란 '연접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게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 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런 판단을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확실한 네 가지 관계는 과학에 합당하지만, 인과관게를 비롯한 나머지 세 가지는 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든 법칙은 인과관계에 의해 표시된다. 인과성 없이는 어떠한 법칙도 생각할 수 없으며, 법칙 없이는 어떠한 과학도 생각할 수 없다. 결국 그는 애초의 뜻과는 반대로 과학의 불가능성을, 진리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만 것이다. 이로써 근대철학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회의주의' 란 이러한 도달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말인 셈이다. 


주체의 해체, 주체철학의 해체

버클리는 지각된 것을 관념이라 하고, 지각하는 것을 정신이라 한다. 그런데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 라고 하며, 지각되지 않은 것은 존재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정신만은, 지각되는 게 아니지만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흄은 이런 에외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흄은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이고,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관념이라고 한다. 인상은 직접적인 것이고 관념은 한번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정신' 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만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흄은 '나' '주체' '자아' '정신' 으로 불리던 것에 대해 그것은 인상과 관념의 묶음,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한다. 돌일한 사람의 인상과 관념, 그 기억의 다발이 바뀜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 라고 하는 항구적인 주체가 과연 있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이리하여 흄은 '정신' 이나 '주체' 라는 범주를 해체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물론이고, 로크나 버클리도 자명한 것으로 간주했던 근대철학의 출발점을 해체한 것이다. 이러한 흄의 주장은 어떤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 버클리식의 유명론을 '정신' 이나 '주체' 에 대해서까지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근대적 문제설정 속에서 유명론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 라는 범주를 해체하게 된 것이다. 


근대철학의 전복

흄은 근대철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진리' 혹은 '과학' 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좀 더 근본적으로 근대철학의 입지점인 '주체' 자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님을 또한 보여주었다. 이것은 근대철학의 '극한' 이며 '한계지점' 이었다. 흄의 주장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급기야 '생각하는 나' (정신, 주체)까지도 의심하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였다. 흄의 회의주의는 '한계선에 선 근대철학' 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흄은 근대철학의 '한계인'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성론』 에서 흄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는 잘못된 이성, 아니면 무이성뿐이다. 나로서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반적인 이성이 할 수 있는, 즉 이러한 난관이 거의, 아니 전혀 주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의 두 페이지쯤 뒤에서 "인간의 동일성, 나라는 주체의 동일성에 대한 견해를 엄밀히 검토한 결과, 나는 완전히 미궁에 빠져서 어떻게 그 견해들을 수정해야 할 지 또 어떻게 그것들을 일관되게 만들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 고 하면서 자신의 책을 끝냈다.


탈출도, 귀환도 아닌......

흄에게 인과관계는 습관에 불과한 것. 이것은 인상이나 관념을 결합시켜 어떤 지식을 형성한다. 이 지식은 '법칙' 이 아니라 '믿음' 이다. 즉 참 된 지식이나 진리 대신에 믿음이란 개념이 들어서는 것이다. 흄은 믿음을 "현재의 인상과 관련이 있는, 혹은 그것들로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들로 연합되어 있는 생생한(살아 있는) 원리" 라고 정의한다. 믿음은 힘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효과를 갖는다.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확실하고 안정감을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 개개인에게 확실한 지식이라는 '감' 을 주고, 그것에 입각해서 행동하게 만든다. 흄에 따르면 믿음은 '허구' 와 다르며 허구가 아니다. 첫째, "느낌이 다르다", 둘째, "파악하는 방식이 다르다."

믿음은 '확실하고 안정감이 있다' 혹은 '옳다' 라고 느끼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흄의 견해는 그것을 다루는 극히 새로운 사고법을 보여준다. 흄은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이것은 근대적인 물음이다―이 지식이 그걸 믿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흄이 보기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논의다. 흄은 근대적 한계의 외부로까지 나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고 다시 근대 안으로 회귀한다. 이런 논의 자체를 자기는 다 거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근대철학의 위기


뒤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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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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