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전: 그 역사적 특성과 새로운 생성 (3강)



우리나라가 우리나라의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그리 길지 않다. 삼국유사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직전부터 처음 연구되기 시작했고, 그 때 단군 신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9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 한문 소설 모든 소설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금오신화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읽혔다는 기록이 없다. 일본에는 금오신화가 그들의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고전을 예학에 한정하여 생각했었다. 예로부터 전해져온 것중 읽어야 하는 것은 예햑에 한정되었다보니 문학작품들은 비교적 차순위로 밀렸었다.


근대적인 서지학을 연 이인영 선생님은 『청분실서목』에 본인이 구입해서 가지고 있던 고전 목록을 작성했다. 그런데 이 분의 서적이 청분실에 없다. 북한에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이 있다. 


신라시대 자료로서 문학으로 아주 주요하게 취급되는 것 중에 《신라수이전》에 '지귀설화'가 있다. 이런 것들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는 없고 《대동운부군옥》이라는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에 일부 채록이 되어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고전 중의 시원이라고 말은 뱉으면서 적극적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최근에 확인해보니까 중국에서 1998년에 신라수이전에 대한 교주본(어떤 텍스트가 정본인가를 복원하고) 주석본까지 냈다. 일본에선 2013년에 완역본을 냈다. 놀라웠다. 교수님께선 이 사실들을 최근까지도 몰랐다. 이 사람들이 다음번 번역으론 1200년대 고려때 나온 각훈이라고 하는 승려가 지은 『해동고승전』이라는 책이 부분만 남아있는데 이를 번역하려고 한다고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고전에 관심이 없는가? 물론 일본에서 번역한 것에 오역도 있었지만 우리가 해야 했던 부분이지 않은가? 이들이 후기에 마음 아픈 얘기를 적어놨다. '한국 문학은 한국 문학의 자족적인 범위를 벗어나서 동아시아의 어떤 설화 세계와 어떠한 사유 체계와 공감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 ' 라고 적어놨다. 오히려 자기들이 적극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잘 하고 있지 않은데...


제일 오래된 것들을 보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적도 없다. 독일이라든가 프랑스라든가 일본에서 했기 때문에 가능한 번역이 나왔다. 


세종은 사정전에서 『자치통감』을 공부하면서 우리 역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구성할지 고민했는데 그것이 『사정전훈의』다. 사서삼경도 우리식으로 번역하려했었다. 그런데 못했다. 세종이 이런 고전을 해석한 가장 결정체가 『용비어천가『다. 이를 아첨이라고 해석하여 문학사에서 빼려는 움직임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세종은 용비어천가에 권발(발음)까지 표시했다. 누구나 읽기 쉽게하려고 그랬다. 조선후기 정조때 가면 그런 것들은 일체 없다. 어차피 누구나 한자를 다 잘 읽을테니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전소설을 볼 때

1. 춘향전

당나라 때 나온 전기소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의 경우 악역이 주로 상인으로 나오는데 이는 기녀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그쪽으로 쏠리는데 그것을 뚫고서 사랑을 쟁취했다고 하는 내용이 중국소설의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령이 나온다. 월매는 춘향의 어머니로 나온다. 국가 권력을 대행할 수령이 향촌 지배 질서 혹은 향촌의 개혁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주절주절 타령도 많이 나온다. 수다스러워요. 그래서 판소리가 재미있다. 왜 민중문학에 이렇게 국어가 적고 한자가 많은가. 하고 일본에서 비판하는데 우리는 판소리가 있다! 얼마나 구수하고 재밌는가! 우리 판소리에 나오는 비유는 정말 맛갈난다. 중국의 한시에서는 나올 수 없는 비유다. 이도령이 멀리 가는 모습을 해처럼 멀어지고 달처럼 멀어지고 별처럼 멀어진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데 그 다음에 '나비처럼 멀어진다' 고 했다. 이런 수사법을 우린 연구해야한다! 말의 향연이다!


2. 홍길동전을 보면 혁명적이다.

홍길동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너무 길어서 다 읽지 않았을 것이다. 율도국에서 새로운 통치자가 되는데 자기는 서얼이지만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장을 해서 제사권을 가져오는 이야기로 끝난다. 제사권을 가져야지만 완전하게 하나의 존재로 인정될 수 있었던 울분을 거기에 쏟는다. 인간사는 미완이다. 이를 옛사람들은 잘 알았던 것 같다.


3. 금오신화는 여러가지 시를 삽입하고 문체가화려한것은 중국소설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 민중 속에 있는 소재를 가져오고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제망매가 향가에 있고 이후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남염부주지』 같은 데서 용왕도 온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이 모든 세계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꿰뚫어본 굉장한 슬픔의 글이다. 아주 철학적인 주제를 문학적으로 했다.


교수님께서 개인적으로 흥이나면, 서글플 때 외우는 시조가 있다.

원천석의 회고가와 길재의 회고가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쳐시니


목적은 목동의 피리다. 이게 참 시적이다. 이제 남은 것은 목동의 피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거만큼 훌륭한 것이 어디있는가.


표현력, 그 표현 속에 담긴 민족적인 정서. 그것이 우리 문학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소감

개인적으로 한국의 고전문학은 평범하고 재미없다고 여겼다. 내용 전개가 너무도 뻔하고 대단한 반전이나 무거운 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고전만의 남다른 매력은 표현에 있다. 나비처럼 멀어진다... 어쩌면 인간사의 모든 것이 나비처럼 멀어지지 않았던가. 그런 관념적인 변화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토속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것.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섬세한 표현이자 우리 문학의 아름다움이라고 다시금 깨우쳤다. 하지만 우리의 문학은 안빈낙도할 때에 읽기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내가 30년만 더 늙으면 한국고전을 찾아 읽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읽고 싶은 류의 책은 아니지만, 우리 고전의 아름다움을 절감하고 이를 향유할 시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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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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