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soft 송길영 부사장님의 강연

▲Daumsoft 송길영 부사장님


우리 학교에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부사장님께서 강연을 하러 오셨다.

요새 가장 핫한 이슈이자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그 주제는 고용 통계 이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용 통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굉장히 명료하며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직업이 없으면 사람들의 화가 늘게 되고, 사건사고의 발생률이 늘어나며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빈도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권과 사회에서 고용통계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화를 키우기 싫어서)


우리의 현실

21살의 대학생 B씨를 고용하면 200만원 가량 든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월 대여료가 6~8만원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기계를 써도 사람의 1/20의 비용으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은 과거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 기계의 비용이 워낙 적어 기업은 예전부터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sentiment에 의해 우리는 무의식중에 기계를 배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그렇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

밀레니얼 세대는 인간보다 기계가 편한 세대다.

영화관을 갔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오늘날 티켓을 배부하는 곳엔 키오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 모두 처음엔 그 변화에 당황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60대의 A아저씨는 팝콘을 튀기고 있는 알바생에게 가서(매표소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티켓 좀 달라'고 한다.

그리고 팝콘을 튀기던 알바생은 그제서야 매표를 해주러 간다.

이 모습에서 우리와 기성세대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기성세대는 사람과의 접촉이 기계와의 접촉보다 잦았던 세대다.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왔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던 세대다.

그들은 인간과의 접촉 혹은 대화를 원하지 기계의 촉감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기계의 촉감이 더 익숙한 세대다.


왜그럴까?


밀레니얼 세대는 인간을 기피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기계를 통하면 주문을 할 때 별다른 스트레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통해 주문을 하면 가끔 노이즈가 발생한다.


'아니 거스름 돈을 왜 던져서 줘?'

'알바생이 저래도 되는거야? 손님은 왕인데?'

'왜 말을 못 알아 듣는거야?'

'주소를 읽어줘야 한다는게 불편하고 무서워'


밀레니얼 세대는 사람과의 접촉에서 부정적인 메모리만 남고

기계와의 접촉에선 자신이 원하는대로 따라준다는 긍정적인 메모리만 남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인간기피 현상으로 이끈 것이다.


유망직업? 허망직업!

유망직업이 변해간다. 유망한 건 곧 허망한 것이다.

유망한 곳에 demand가 몰릴 것이고 곧 reward는 줄어들 것이다.

다시 말해, 거대한 자본이 유망한 곳에 몰릴 것이고 형태가속화되어 금방 소멸할 것이다.

reward가 값지더라도 그것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적은 비율일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에 비해 빈약한 보상으로 고통스럽다.

한국인은 직업을 고를 때 돈 or 출퇴근이 자유로운지를 중점을 둔다.

하지만 미국인은 flexibility를 원한다.

그것은 본인의 자아형성을 추구하는 요새 선진국의 흐름이다.

우리는 왜 돈에만 집착하는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도 이정도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돈에 목을 맨다.


김부장과 최사원의 차이

청년들은 나중에 좋아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확행, seize the day, Carpediem이다.

가벼운 소비를 자주 하려 한다.

김부장은 그들에게 왜 이렇게 돈을 낭비하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낭비하지 않는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현재에 투자한다.

나중에 편하게 거주할 집을 살 수 없다.

300년을 일해야 강남에 20평대 집 한 채를 구할 수 있다.

어차피 안되니까 그냥 쓰는거다.


요새는 #xx맛집, 후기 등의 검색어가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도전하지 않고 누군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행동하려 한다.

안정적인 행동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성공해 본 경험이 드물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부는 바람

밀레니얼 세대는 미괄식, 천천히를 굉장히 혐오한다.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넘어가기를 원한다.

그것이 그 세대의 특징이다.

육아를 원하지 않는다.

애를 낳는 것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육아를 하지 않으면서 대안으로 그들은 반려견을 키운다.

아니 반려견을 모신다.

강아지→애완동물→반려견으로 단어의 사용이 변하였다.

반려견은 인간아기보다 양육비가 덜 들고, 새벽에 나의 따스한 잠자리를 깨우지 않는다.

그래서 유전자 보전이라는 인류학적 숙명보단 '나'의 가치를 중요시 한다.


웨딩회사 '결혼해듀오'나 기저귀회사인 유한킴벌리는 매출이 점점 줄고 있다.

2017년 아기가 30만 명 태어났다고 한다. 지금 대학생들인 세대는 70만 명쯤이다.

과연 국민연금이 지속될 수 있을까?

정부를 너무 맹신하지마라.


과거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이경규가 그랬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뭐라고 했는가?

아무나 되라고 한다.

그것이 밀레니얼 세대다.

'나'가 되길 바란다.

유일함, 독자성, unique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다.


현재 대한민국 나라 전체에 유행하는 것이 있다.

여유 코스프레다.

좋은 소식이다. 우린 그동안 지나치게 근면했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의식구조가 아직 농업사회에 지체되어 있었다.

농업사회의 근면함을 한국사회가 탈피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커피가 성공하게 되었다. 이는 여유의 증표이다.


과연 그대들은 커피를 정말로 좋아하는가?

맛있어서? 고소해서? 따스해서? 정신을 맑게 해줘서?

인간은 의사결정을 할 때, 행동하고나서 핑계를 만든다고 한다.

homoeconomicus? raionality?

다 아니다. 우리는 직관적이다.

우리는 비이성적이다.


상사의 변화

과거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상사들이 빚을 져서라도 집을 사라고 했다.

이자를 갚으면서 연명하다보면 어차피 집 값은 뛰게 되고,

그 차익은 빚을 갚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상사가 밀레니얼 세대의 사원들에게는 다르게 말한다. 

"커피나 한 잔 해"

이 말이 이제는 무섭게 들릴 것이다.

=>쥐꼬리만한 돈 모아봤자 집도 못 사. 그냥 소확행이나 하고 살아


짜투리 이야기

나만 모르는 것이 있다.

가까울수록 더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무서운거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현명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선!)


내가 가진 것을 팔아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이다.

남들이 가진 것을 따라하면 10년 뒤 거지꼴이 될 것이다.


힘들어야 내 것이다.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이 부모를 만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과가 없으니까..

기회도 없고 성공해보지도 못하고 면목이 없으니까

그대들은 부모를 볼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게 된다.


눈치를 보고 있으면 창의력은 키워지지 않는다.

눈치보지 않는 행동이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불안정한 고용시장,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가 분업하는 이유는 협력을 위한 분업이다.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면 당신은 일단 살아남는다.

직업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줄 게 있는 것이어야 한다.

average는 AI가 대체한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


Richard Rorty의 final vocabulary<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참고: https://kecologist.blog.me/221145046664)

내게 가장 중요한 어휘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어휘는 이를 의미한다.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을 정당화시킨는 데 필요한 단어.

딜레마 상황에 빠졌거나 결연한 결단을 내릴 때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어휘. 

간디에게는 비폭력, 

부처에게는 자비, 

공자에게는 인, 

잡스에게는 혁신, 

리처드 브랜슨에게는 상상, 

플라톤에게는 이데아, 

사르트르에게는 실존, 

스피노자에게는 코나투스, 

니체에게는 아모르파티, 

라캉에게는 욕망,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언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대들의 고민은 final vocabulary를 남겨줄 것이다.


(이 분의 PT 스킬 중 화법이 가장 큰 데,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부분에선 목소리를 내리까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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