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재검토_아마티아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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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필자가 선택한 접근방식은 삶을 구성하는 가치 있는 기능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가치를 부여할 만한 근거를 지닌 목표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유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상 어떤 부분에서는 이것을 '평등과 자유'라고 부르기도 했다. 필자는 이런 접근방식을 중심문제에 대해 다르게 답변하는 방식들(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서부터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을 포괄하는)과 구별한다. 사실상 필자에게 지적으로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인물은 의심할 바 없이 존 롤즈이다. 필자는 그의 포괄적인 추론방식에 감동받았으며 심지어 (롤즈가 기초재라고 부르는 자유의 수단이 아니라, 자유의 크기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분석방향을 바꾼 경우에도 상당부분 롤즈의 이론에 대한 명시적이 비판에 기대어 그렇게 결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불평등의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 차원의 접근방식을 고안하면서 동시에 사회체계를 평가하는 방법과 관련된 내용 차원의 접근방식을 탐색한다.

p8

 

평등이념은 인간의 기본적인 이질성과 평등을 판단할 수 있는 변수들의 다원성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다양성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두 가지 다양성, 특히 양자의 관계를 문제 삼는다. 인간의 이질성은 변수마다 평등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만든다. 바로 이것 때문에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라는 중심문제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p19

 

사람들의 이질성 때문에 공간(소득, , 행복 등)마다 불평등의 특성이 서로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한 변수의 평등이 다른 변수의 평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균등한 기회가 아주 불균등한 소득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균등한 소득이 상당한 부의 차이와 양립할 수 있다. 균등한 부가 매우 불균등한 행복과 공존할 수 있다. 균등한 행복이 매우 다양한 욕구충족과 공존할 수 있으며 균등한 욕구충족이 상이한 선택의 자유와 연결될 수 있다.

p21

 

능력관점은 오랫동안 지배했던 다양한 기회균등개념과도 다르다. 아주 기본적인 의미에서 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은 실제로 그 또는 그녀가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지칭한다. 그러나 기회균등개념은 대부분의 정책문헌에서 특정 수단에 대한 균등한 이용가능성으로 정의되거나 혹은 어떤 특수한 장벽이나 제약조건의 균등한 적용가능성 또는 균등한 적용불가능성과 관련하여 정의되면서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 이용된다. 기회균등을 이렇게 정의하게 되면, 그것은 전반적인 자유의 평등 같은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근본적인 다양성과 표준적인 기회균등 관점에서 고려되지 않는 소득이나 부와 같은 다양한 수단들의 존재와 중요성 때문이다. 이 글에서 설명되고 옹호되는 입장에서 보면, ‘실질적인기회균등은 능력평등을 통해서 혹은 완전한 능력비교란 불가능하므로 분명한 능력불평등을 제거하는 방식을 통해서 좀 더 적절하게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의무에 평등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에 대한 요구도 존재한다.

p28

 

만약 빈곤을 최소 기본능력수준의 결핍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절대적인 측면과 상대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게 되는 이유를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고려사항은 특정 국가에서 빈곤을 분석하는 데 중요하며, 특히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부자나라에서 빈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 그렇지 않다면, 부자나라에서 빈곤이 지속되는 상황은 명백히 수수께끼와 같은 현상일 뿐이다. 서로 다른 공간의 결핍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특히 소득과 안전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의 관계에 대해 명시적으로 고려하면, 위와 같은 문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p31

 

일반적인 필요조건으로 제시되는 불편부당성(impartiality)’과 일부 실질적으로 엄격한 보편화 가능성(universalizability)’ 형식에 대한 요구는 어떤 중요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똑같이 고려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일반적인 유형의 추론방식은 확실히 윤리학의 토대와 많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제안에 대한 방법론적 토대를 확보한 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p44

 

현재의 맥락에서 중요한 문제는 평등을 이용해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전략의 본질이다. 노직의 접근방식은 이런 일반적인 전략의 투명하고 멋진 사례이다. 만약 어떤 중요한 공간의 불평등이 옳다거나 좋다 또는 수용할 수 있거나 견딜 만하다는 주장을 가령, 반대자를 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옹호하려면 불평등이 좀 더 핵심적으로 중요한 공간의 평등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을 보여주는 형태로 논증이 이루어진다. 기본공간에서 평등을 확보할 필요성에 대해 폭넓은 동의가 존재하며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그 또는 그녀들간의 불편부당성이라는 중요한 필요조건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면, 선택된 기본공간의 합당함에 대해 결정적인 논증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라는 물음이 기본적인 평등에 대해 올바른 공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제시하는 답변은 선택된 공간(기본적 평등에 대한 요구와 관련된 중심변수)에서 평등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의 분배유형(불가피한 불평등을 포함해서)에 대해서도 폭넓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상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라는 문제야말로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이다.

p49

 

우리는 이렇게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문제는 곧 다음과 같은 의문을 만들어낸다. 누가, 얼마나 많이 갖고, 어떻게 분배되고, 얼마나 평등한가. 따라서 평등 문제는 곧 자유의 중요성의 주장에 대한 보충물로 나타난다. 자유주의적 제안은 관련된 사람들의 권리분배에 대해 계속해서 구체화함으로써 완성되어야 한다. 사실, 자유주의의 자유 요구는 전형적으로 균등한 자유’, 즉 다른 사람들의 간섭에서 똑같이 벗어나길 고집한다는 중요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가 중요하다는 신념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자유의 평등을 증진하도록 사회체계가 고안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과 충돌할 수 없다. (중략) 엄밀히 말해서 자유와 평등의 차이에 비추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범주상의 오류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자유는 평등의 가능한 적용분야에 속하고 평등은 자유의 가능한 분배유형에 속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평등에 대한 요구를 구체화하고 이성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공간선택 문에 명시적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는 점은 피하기 힘든 부분이다. 한편에서 단순히 균등한 자유주의적 권리만을 요구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폭넓은 성취목록 및 그에 따른 자유의 목록과 관련된 평등을 다양하면서도 절박한 목소리로 요구한다. 이 글은 주로 이런 다원성과 그것의 다양한 결과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p51

 

더글라스 래(Douglas Rae)는 오늘날의 다양한 평등개념을 섬세하고 유용하게 분석하면서 질서나 효율성 또는 자유보다 강력하게 평등을 거부할 수 있는 관념은 바로 평등 자체라고 말한다. 래는 평등이념이 지나치다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근거에서 평등이 독자적으로 그 어떤 실질적 내용도 갖지 않은 공허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평등이 그와 같이 상이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평등요구는 진실로 실질적인 요구사항으로 여겨질 수 없다.

p54

 

성취수준을 확인하는 방법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취수준과 성취할 수 있는 자유를 구별하는 문제이다. 개인의 이점을 평가하고 좋은 사회질서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잘 알려진 것들 중 일부는 오로지 성취에만 직접적으로 관심을 보일 뿐, 성취할 수 있는 자유의 중요성을 단순히 도구적인 차원(실제 성취를 위한 수단)에서 접근한다. 한 가지 명백한 사례가 바로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사회적 차원에서 개인별로 비교·평가하는 일을 성취수준에만 한정지으며 성취수준을 효용획득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두 가지 특징 때문에 공리주의는 개인과 사회를 평가하면서 개인별로 비교된 효용에 정보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p67

 

능력은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기능을 확보할 수 있는 자유를 반영한다. 이것은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보다 곧바로 자유 자체를 주목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적 대안들을 확인시켜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실질적인 자유를 반영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기능이 복지의 구성요소인 한, 능력은 개인이 복지를 확보할 수 있는 자유를 나타낸다.

p97

 

때로는 효용에 대한 욕구충족해석이 심리상태관점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효용은 쾌감과 같은 심리상태를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바라던 상태를 객관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실로 이 구분은 중요하다. 또한 욕구충족(여기서 우리는 오로지 바라던 대상이 확보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할 뿐이다)이란 의미에서 특정한 효용의 존재를 판단하는 데 실제로 어떤 심리적 척도도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완전한 복지주의적 평가를 위해서는 효용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저러한 형태의 효용들을 측정하고 비교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만일 욕구충족의 중요성을 욕구의 강렬함과 연결시키는 관점에 기대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 반드시 욕구의 강도를 비교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공리주의적 평가와 여타 효용기반 평가에서 효용의 욕구충족 관점을 이용하려면, 욕구 일부 일반에 대한 심리적 척도를 폭넓게 이용해야 할 것이다.

p103

 

욕구충족이 기준으로 고려된다면 능력과 기능을 아주 독특하게 평가하는 방법이 선택될 것이다. 이처럼 독특하게 능력과 기능을 평가하는 관점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치열한 논쟁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평가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고 욕구에 대한 척도를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규범적 평가작업에 대해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특히 뿌리깊은 불평등과 결핍 맥락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철저하게 궁핍한 사람이 아주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이런 곤경을 받아들인다면, 욕구와 그것의 충족에 대한 심리적 척도에 비추어 나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오랜 결핍상황에서 희생자들은 항상 슬퍼하거나 비탄에 잠기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작은 도움에서도 쾌감을 얻고자 애쓰며 적당한(‘현실적인’) 비율로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자 애써 노력한다.

p104

 

자유와 복지가 항상 같은 길이나 심지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고찰할 때, 복지자유와 행위자유의 구분은 아주 중요하다. 행위자유의 고양, 즉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의 향상이 복지자유의 감소와 그에 따른 확보된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어떤 모순도 없을 것이다. 사실상 행위와 복지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정확히 이런 갈등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막고 싶어 하는 범죄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 있다면, 필자의 행위자유는 확실히 늘어난다. 이제 필자는 그 끔찍한 사건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복지는 감소될지 모른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필자는 그 싸움을 정말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즉 필자가 겪을지도 모르는 복지축소보다 다른 행위목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히 필자의 선택된 노력의 결과로 필자의 복지일반이 축소될 수 없다는 점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자유를 행위자유로 여긴다면, 행위자유가 늘어나면서 확보된 복지수준이 낮아지는 상반된 움직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복지확보만이 아니라 복지자유도 종종 행위자유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실, 위에서 언급된 범죄방지사례에서도 범죄현장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결과로 필자의 복지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필자의 행위자유가 늘어난 상황인데도 복지를 확보할 수 있는 필자의 자유가 감소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너무 가까이 있다면, 그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범죄를 막을 수 있는 필자의 능력 증가와 복지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 감소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것은, 만일 필자가 비겁한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가 방해받지 않고 떠날 수 있다 하더라도, 바로 그 생생한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이상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범죄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는 일에서 의식적으로 손을 뗄 필요도 없이 누렸을 안전함과 무죄감이라는 두 가지 위안도 더 이상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행위자유와 행위성취가 늘어나는 것과 달리 모두 축소되어 필자의 복지자유가 축소될 수도 있는 경우이므로 복지확보와 복지자유의 운동 방향 사이에 어떠한 갈등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그러므로 어떤 자유관이 선택되든 간에 복지와 자유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만약 자유를 행위자유로 여긴다면, 그것의 확장이 복지확보와 복지자유를 모두 축소시키는 상황과 공존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자유를 복지자유로 여긴다면, 당연히 자유와 확보된 복지 사이에 어떠한 충돌(늘어난 복지자유와 함께 복지확보 기회가 축소된 데서 비롯된)도 발생할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복지자유와 복지확보 사이에 충돌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 오로지 그들의 복지추구를 통해서만 이끌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자유의 증대가 개인의 선택방향을 복지와 무관한 목표를 추구하는 쪽으로 이동시키는 변화를 수반한다면, 복지자유는 늘어나지만 복지확보가 상당히 축소될 것이다. 언뜻 보면 마지막 경우가 약간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실질적인 수수께끼도 없다. 복지자유를 확장시키는 변화 때문에 개인이 좀 더 강력하게 다른 복지와 무관한 목적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로 개인이 확보하고자 선택하는 복지수준이 악화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적당한 사례를 들어보자. 어떤 의사가 자신의 복지수준을 기꺼이 희생하면서까지 끔찍스러울 정도로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에 가서 일하고자 하지만 그토록 먼 나라에 가기 위한 수단과 기회가 없어서 그러한 행동이 막혀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그녀의 소득상승(이것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으로 새로운 경제상황이 나타나서 그녀가 좀 더 많은 복지자유와 좀 더 많은 행위자유를 동시에 확보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그녀가 후자를 선택한다면, 아마도 분명히 복지확보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행위자유와 복지자유가 모두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복지확보수준이 낮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를 행위자유로 해석하든, 복지자유로 해석하든 간에, 자유와 복지확보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충돌이 얼마나 일반적인 현상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좀 더 큰 복지추구 기회(복지자유의 증대)가 자주 포착되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지금까지 이 장에서 검토했듯이, 증대된 자유가 그 자체로 복지확보에 기여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선택과 의사결정은 잘사는 것의 가치 있는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형태의 자유든 복지확보와 충돌할 수 있다. 충돌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두 측면(복지와 행위)의 구분에 담겨 있는 실질적인 내용과 관련된다. 이 구분은 불평등을 평가할 수 있는 두 가지 상이한 관점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어떤 관점의 자유든 간에 복지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p113

 

자유는 복잡한 개념이다. 좀 더 많은 대안들과 마주친다는 것이 반드시 개인 자유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가심이 없는 삶, 그것도 미쳐버릴 정도로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내장되어 있지 않은 가치 있는 것이라면, 원하는 삶의 형태를 확보할 수 있는 자유가 사소한 선택들의 다양성을 통해 반드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외관상 자유와 이익의 충돌로 보일 수 있는 것은 자유의 종류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좋든 싫든 해야만 하는 사소한 선택들이 늘어남으로써 평화롭고 성가시지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선택 대안의 상실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자유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중략) 여기서 실제로 충돌은 우리의 자유와 이익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다양한 형태의 사소한 자유와 선택영역에 대해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끊임없이 사소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성가심에서 해방되어 한가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자유와 이익 사이에서 인지되는 몇 가지 충돌은 자유에 대한 과소 규정, 즉 원치 않는 선택을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문제는 자유를 판단하는 데 반드시 가치평가 문제가 따라붙는다는 조건과 연결된다.

p118

 

적절한 개인특성의 선택사례로는 효용 외에도 자유와 기초재(Rawls), 권리(Nozick), 자원(Dworkin), 상품묶음(Foley, Pazner and Schmeidler, Varian, Baumol). 다양한 혼합공간(Suzumura, Wriglesworth, Riley) 등이 있다. 개인 특성이 어떤 경우에는 복지주의 이론, 예를 들면 공리주의처럼 대체로 결과유형, 에를 들면 향유된 상품묶음에 따라 정의되거나, 다른 경우에는 특정 방식, 예를 들면 기초재, 권리, 자원으로 규정된 기회와 관련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개인 특성의 선택은 결합공식의 선택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총합-극대화, 사전편찬식 우선순위와 최소 극대화, 평등 또는 다양한 다른 결합규칙들 중의 하나가 후자의 사례에 속한다. 그러므로 정의론은 이미 자신의 실질적인 내용 속에 폭넓고 상이한 정보기반과 각 정보의 다양한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 정보편차는 우리가 이 글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중심변수의 복수성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앞서 밝혔듯이, 모든 정의론은 기본적인 평등에 대한 특정한 요구조건을 선택하는 것(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간에)을 포함하고 있으며 후자는 불평등을 평가하기 위한 중심벼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정의관에 따라 요구조건들이 달라지지만, 이는 모두 전자의 평등관이 지닌 적절성과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

p137

 

필자는 지나치게 자유에 편중된 정의관, 즉 개인이 실제로 누리는 자유의 크기보다 자유의 수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논박했다. 사람마다 이런 기초재와 자원을 기능 및 기타 성취결과에 대한 다양한 조합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기초재나 자원보유의 평등이 실제로 누리는 자유의 심각한 불평등과 공존할 수 있다. 여기서 중심문제는 이런 자유의 불평등이 정치적 정의관의 배후 이념을 충족시키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능력기반 정의평가에서 개인의 요구조건은 그가 소유한 자원이나 기초재에 다라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누리는 자유에 따라 평가된다. 이런 현실적인 자유는 바로 개인들이 다양하며 대안적인 기능조합들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된다. 능력(실제로 누리는 자유를 나타내는 데)(1)기초재 및 기타 자원과 (2)실제로 누리는 기능조합 및 기타 실현된 결과 등을 포함한 성취에서 각각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능력과 기초재의 구별의 예를 들면, 어떤 장애인은 소득, , 자유 등의 기초재를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장애 때문에 능력에서 뒤질 수 있다. 빈곤에 대한 연구에서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소득과 영양상태 측면에서 남보다 좋지만 높은 기초대사율, 기생충에 대한 취약성, 비만 또는 단순히 임신 때문에 좋은 영양상태로 살 수 있는 자유가 남보다 적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부유한 나라의 빈곤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소득과 다른 기초재에 비추어볼 때, 수많은 가난뱅이들은 기초재를 기본능력(이주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면서 공동체의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으로 전환시키기 힘든 몇 가지 특성(노령, 불구, 질병에 대한 취약성 등)을 갖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기초재나 자원을 좀 더 폭넓게 정의하더라도 이것들은 결코 사람이 실제로 향유하는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두 번째 구별을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목표에 따라 다른 기능묶음을 선택할 수 있다. 더욱이 두 사람이 실제로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고 심지어 목표까지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이나 전술을 이용함으로서 상이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롤즈는 필자의 비판에 대해 응답하면서 누구나 공통의 동일한 목표(모두가 공유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것은 바로 사람들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기초재를 능력으로 바꾸는 전환율의 차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설령 이런 가정(즉 누구나 동일한 목표를 갖는다)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롤즈의 정치적 정의관과 확실히 어긋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는 각자 선에 대해 포괄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개인들 사이에서 목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p149

 

롤즈의 정의관은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그의 이론은 오로지 결과와 성취의 불평등에만 머물던 우리의 관심 방향을 기회와 자유에 대한 불평등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사회의 공정한 기본구조에 대한 그의 이론은 자유의 크기보다 자유의 수단에 집중함으로써 자유일반에 대해 적절한 관심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 자유의 수단에 초점을 맞추었던 이유는 결과와 성취에 대해 하나의 특정한 포괄적 견해를 선택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롤즈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이, 이런 가정은 완벽하게 정확한 것이 아니다. 자유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수단과 자신이 지탱해주는 성취에서 모두 구별될 수 있다.

p157

 

사회마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극심한 결핍으로 평가되는 것에 대해 다양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일반 기능과 이와 관련된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특정 상품묶음과 이를 확보하기 위한 기능에 도달하는 특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그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좀 더 강력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중략)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빈곤은 어떤 최소 수용수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기본능력의 실패로 볼 수 있다. 이런 분석에 걸맞은 기능들은 근본적으로 물리적인 요인(의식주를 적절하게 확보하고 예방가능한 질병을 피하는 일)에서부터 좀 더 복잡한 사회적 성취(공동체 생활에 참여하고 대중 앞에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할 수 있따. 이것들은 오히려 일반적인기능이지만 앞서 논의했듯이, 이 기능을 충족하는 형태는 사회마다 다를 것이다.

p195

 

 

소득공간에서 적절한 빈곤개념은 개인별 특성과 무관한 저소득이 아니라 최소로 수용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과 관련된 부적합성이다. 개인별 특성을 무시하는 빈곤선으로는 빈곤 이면에 놓인 우리의 실질적인 관심사, 즉 부적합한 경제적 수단에서 비롯된 능력실패를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때로는 개인들을 계급, , 직업, 고용상의 지위 등과 관련된 특정 범주에 따라 집단으로 묶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소득고간에서 빈곤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필요한 소득은 반드시 최소 능력에 대한 인과적 요구사항과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빈곤분석이 기본적으로 확보된 기능수준보다 기능할 수 있는 능력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 즉 수단이 없기 때문에 굶어야 하는 사람과 수단을 갖고 있지만 단식을 선택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사람 모두 마지막에는 굶어서 영양경핍상태에 빠지게 되겠지만 단식하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수단이 없는 사람이 가난하다. 빈곤분석은 때때로 우리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추측하기 위해서 성취수준에 대한 정보를 이용한다고 할지라도 성취수준이 아닌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p200

 

이 글은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된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주로 방법론의 문제이며 두 번째는 내용의 문제이다. 첫 번째 쟁점은 평등주의에 대해 정당하게 질문할 수 있는 문제들, 특히 왜 평등인가와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의 타당성과 범위에 관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다양성과 평등을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의 복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공간에서 제기되는 평등에 대한 요구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한 공간의 평등은 다른 공간에서 실질적인 불평등을 동반한다. 두 번째 쟁점은 특히 평등에 대한 접근이 지닌 실질적인 내용을 탐구하는 것과 관련된다. 필자는 방법론적 쟁점에서 시작했지만,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실질적인 문제들과 관련된다. 성취할 수 있는 자유(실제 성취수준을 포함하면서 더 나아가는)에 기대어 개인의 우위를 판단하는 관점도 필자가 탐구했던 평등에 대한 접근에 포함된다. 필자가 보기에 많은 맥락에서, 특히 개인의 복지수준을 평가하는 맥락에서 이런 조건들은 기능할 수 있는 능력(한 사람이 획득할 수 있는 실제 기능을 포함하면서 더 나아가는)에 기대어 효과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능력접근은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성취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일반적 관심 위에서 구축된다.

p228

 

사회체계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체계에 대해 평등의 타당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음과 같은 세 유형 중 한 가지를 이용해서 소득이나 능력과 같은 특정 변수의 불평등을 옹호할 수 있다. (1)‘잘못된 공간(2)‘유인(3) ‘조작적 비대칭성론이 그것이다. 잘못된 공간론은 소득이나 능력, 아니면 그 무엇이든 간에 문제되는 변수가 평등을 추구하는 기준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형식을 보인다.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그것은 평등에 대한 요구에 적합한 공간을 제시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주장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다른 공간의 평등에 대한 필요성이다. 자유지상주의적 권리의 평등(Nozick), 자신의 생산물을 평등하게 즐길 권리(Bauer), 어떤 절차에 따라 똑같이 불편부당하게 대우받는 것(Gauthier), 집계치 극대화에서 개인의 효용에 똑같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Bentham, Harsany, Hare),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다른 공간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논쟁대상인 소득이나 능력 또는 효용수준이나 평등주의자들이 옹호하는 특정 분야에서 평등을 주장할 수 없다. (중략) 유인론은 사람들에게 목표 증진에 적당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평등은 노동과 사업 그리고 투자를 유인하는 데 기능상 유용한 역할을 담당한다. 흔히 우리는 목표들이 분배와 관계없이 개인의 성취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에서, 즉 파레토 개선을 추구하거나 총합을 극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집계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제로 효율성에 대한 요구는 집계 차원의 목표이자 분배 차원의 목표인 어떤 목표유형과 관련된다. 다른 목표에 맞추어 평등 자체를 추구하는 과정에도 효율성 쟁점이 나타난다. 유인론은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선택과 행위가 전반적인 목표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동기와 자극을 부여할 필요성을 분석한다. 이것은 순전히 집계 차원의 목적일 수 있거나 분배 차원의 목적을 포함할 수도 있다. (중략) 세 번째 이론도 평등과 효율성의 갈등과 연결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특히 집계목표와 이를 달성하는 데 불평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로 분석한다. 이런 비대칭성의 필요성은 사람들이 숙련도와 능력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좀 더 유능하고 숙련된 사람에게 정부를 운영하는 영역이나 기업의 의사결정분야와 같은 특별한 유형의 권력과 능력을 좀 더 낳이 제공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익은 분명히 권력과 능력불평등을 수반할 것이다. 이런 조작적 비대칭성론은 특히 몇몇 공간(이를테면, 권력과 능력)의 불평등에 적용되는데, 다른 공간(이를테면, 효용)에는 곧바로 적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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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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