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죄악인가_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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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읽기를 바란다. 치우쳐진 민족적 의식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이켜주어 세상을 좀 더 수평적인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큼 보편적으로 애국심에 대해 미망한 자세를 가진 국가가 있을까. 우리 세대의 가장 거대한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어서 자각하기를.


 

1. ‘우리’, 민족, 민족주의

 

에네스트 르낭은, 이미 유명해진 발언이지만, 민족의 존재란, “개인의 존재가 삶에 대한 영속적인 긍정인 것처럼”.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라고까지 주장한다. 물론 정의가 완전한 경우는 수학적이거나 엄밀한 통제하에 있는 물리적 대상뿐이므로 민족이나 민족주의의 정의가 애매모호한 것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모든 언어 개념의 한계이다. 애매모호함은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족 개념이 어떤 본질적 결함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p14

 

한국인은 단일민족’ (사실은 단일종족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만)이라는 게 긍정적인지도 불확실하지만 그것은 사실에 어긋난다. 사실 단일을 이룬 것은 근대 초엽부터 분단까지의 짧은 시간대에만 한정된다. 혈통을 따지더라도 일본, 중국, 거란, 여진, 말갈, 심지어 아랍계 등의 피가 섞여 있다. 몽고족과의 혼혈, ‘왜인과의 혼혈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화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중략) 이런 점들을 무시하는 것은 영토순결주의에 가까운 발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에서 이민족의 흔적을 삭제하고 부정하려는 근대 민족주의의 결과다.

p17

 

일본의 의미에 대해 실증적으로 천착한 아미노 요시히코에 의하면 기원전 3, 4세기경부터 야요이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코리아 반도에서 열도 서부, 북큐우슈, 세토나이카이 부근, 킹키 등으로 이주해왔다. 이들은 북동아시아계 퉁구스의 후예로 보이며 7세기까지 약 1천 년 동안 무려 120만 명 이상이 집단적으로 이주했다. 오늘날의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에 한국의 문화를 전수해주었다는 자부심에 도움이 되는 현상이지만 사실은 이들에게는 일본인이라든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전혀 없었다. 그저 그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한 문화생활공동체에 속했던 집단, 해민이었을 뿐이다.

p19

 

대체로 민족을 둘러싼 논의에 보이는 것은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 즉 종족적 민족론과 정치시민적 민족론이다. 전자는 집단적 공통성 즉, 혈연적 문화, 언어적 기원과 동질성을 강조한다. 대체로 민족의 기원이 고대사회에서 시작되었으며 친족의 확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시민적 민족론은 민족이 근대에 와서야 생긴 개념이고 그것은 구성원 간의 평등한 정치적 시민적 권리 및 동일성을 기초로 발생한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버나드 야크가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을 두 가지로 구분한 것도 이와 유사하다. 독일, 일본 그리고 대부분의 동유럽국가에 존재하는 것은 민족에 대해 에스닉(ethnic: 종족적)한 입장을 취한다. 반대로 참여자의 정치적 정체성과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는 프랑스, 캐나다 및 미국에 존재하는 유형이다. 그것은 ethnos demos간의 차이다. 후자 즉 시민(혹은 공공) 민족은 평등하고 권리를 가진 시민들, 공유된 정치적 실천 및 가치에 대한 애국적 귀속에 부착된 시민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다라서 후자는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를 축으로 하는 게몽사상과 연동된다. 하지만 전자는 그러한 사상을 부정하고 개인의 가장 깊은 귀속감이 선택된 게 아니고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개인을 규정하는 것은 민족·종족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즉 에스닉 민족의 신화는 민족정체성에서 개인의 선택은 전혀 없다고 이야기하는 반면에 시민민족론에 의하면 민족 정체성은 선택의 문제고 같은 생각을 가진 개인들과 공유하는 정치적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시민민족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는, ‘헌법적 애국주의와 일맥상통한다.

p26

 

2. 민족과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공통된 특성 때문에 민족이 생긴 게 아니라 민족주의가 공통된 특성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집단과의 차이를 인식하고 형성하면서 자신을 동질적 집단으로 재구성하는 게 민족주의다. 고자카이가 말했듯,'여러 인간이 모여서 생긴 집합이 하나의 민족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집단이 고유의 문화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사람들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범주화함으로써 복수의 집단으로 구별하고 그것을 민족이라는 단위로 파악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처음부터 동일성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운동이 먼저 있고, 그것이 동일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p50

 

어네스트 겔너는 그것이 근대적 산업화에 필요한 대규모의 교육받은 계층을 만들어내려는 필요에 대응해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즉 산업화에 필요한 인구를 확보해야 하는데 마을의 규모는 너무 작고 인류공동체는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중간단계에 있는 민족공동체가 적정한 규모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산업화에 필요한 인적 자원으로 양성되는 데는 가족과 촌락뿐만 아니라 적정한 규모의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촌락은 그것을 자생적으로 재생산하지 못한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시민권 자격의 요건이 글을 쓰고 읽는 능력 및 기술적 능력이라면 민족 규모의 교육제도만이 그러한 완전한 시민들을 산출할 수 있다. 또한 겔너는 민족주의란 산업화나 근대화 그 자체보다는 그 고르지 못한 확신과 관련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즉 산업화는 날카로운 사회적 계층분화를 일으키고 그것은 전통사회에서와는 달리 오랜 관습에 의해 별다른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사회적 혁명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 결과 민족이 분리되거나 독립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균열이 즉, 선진적 집단과 낙후된 집단 간에 보이는 유전적및 문화적 특징들에 의해 쉽사리 식별이 된다면, 자신들을 민족으로 생각하고 독립을 추구할 강력한 유인과 그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p55

 

이 문제는 거꾸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자본-노동, 지배-피지배 간의 계급적 균열을 만든다. 이 균열을 어떻게 정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지향하는 모든 주권국가의 고민이었다. 그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흘러내림 이론(trickle down theory)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회의 부가 일정 이상 상층부에 축적되면 하층부로 흘러내리게 된다는 근대화이론의 일종이다. 따라서 빈곤상태에 놓인 피지배집단은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을 받아들여 혁명을 택하지 않고 현재 상태에 머물게 된다. 또 하나의 해결책은 민족주의가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고통은 조국 근대화민족번영을 위해서 불가피한 것이다. 즉 민족주의 신화가 게급 간 갈등을 은폐하고 계급적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박정희시대의 관제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민족주의가 산업화과정에서 맡은 이데올로기적 역할이 대표적 예다.

p57

 

가족노동에 대해서는 회사가 임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특히 여성은 임금 없는 노동을 함으로써 노동재생산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가정구조는 종족이라고 불리는 공동체에 위치되어 있다. 따라서 한 국가 내의 경계 안에는 직업적 위계질서와 함께 노동력이 종족화되어 있다.

p58

 

우파민족주의자들은 우리단군의 자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단군은 매우 익숙한 개념이지만 조선시대 사람들 대다수가 단군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단군은 조선 말기에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애국계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구심점을 구축하기 위해서 역사 속에서 발견, 확대한 인물에 불과하다. 북조선에서는 단군왕릉이 세워졌다. 남북이 똑같이 단군을 시조로 수용하는 셈이다. 을지문덕도 마찬가지다. 조선 말기에도 을지문덕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 지식인에 불과했다. 을지문덕은 순전히 신채호의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서 발굴된 영웅이다. 실재 인물 이순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시대의 군사주의적 필요, 즉 군부독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이순신 장군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민족의 영웅이 되었겠는가? 100년 후의 한국에서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점에서 문화 및 전통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어떤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공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전통은 각 시대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재구성되는 문화적 체계이며 그것은 항상 현대적이다. 따라서 일정한 역사의 왜곡은 민족형성의 일부다.”

p61

 

민족은 이유를 막론하고 조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가령 빵이 있는 곳에 조국이 있다.”) 혈연적, 언어적, 종교적, 인종적, 문화적 차이 등과 관계없이 (물론 관련 있을 수도 있지만) 가능한 의식인 것이다. 즉 민족은 많은 논쟁에도 불과하고 객관적 기준이 없으며, 다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같은 민족혹은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할 때 정확히 그 의미가 드러난다. 민족은 대다수의 주관적 관념에 기초한 의식이고 국가에 의해서 지탱되는 범주다.

p62

 

3. 민족의 ’ -위험한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근대국가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으며 그것을 통하여 근대국가는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정치경제적 해석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요구하는 일정한 단위의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서 민족의 생산이 요구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종족적 집단은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 탄생하였다. 자본제로의 이행에서 필수적인 봉건적 신분제 폐지에서 민족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회원간의 적어도 형식적 평등과 동등한 권리를 내포하는 민족의 개념은 봉건적/중세적 신분제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의 창출에 직결되었다. 동질적 집단적 귀속감은 강고한 신분적 위게질서에 의거해서는 형성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근대민족의 형성은 결국 적어도 형식적 평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및 공화제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p75

 

민족주의가 강해지면 계급의식은 그만큼 약화된다. 출구를 찾는 계급적 분노가 조국과 민족의 번영이라는 명분으로 치환되고 만다. 그것을 통해서 지배집단의 헤게모니와 이익은 더욱 강화된다.

p80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07년에 한국의 단일민족이데올로기가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리버럴(liberal) 민족주의의 고민은 시민적 회원자격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다수의 정체성을 특권화하면서 소수집단을 불가피하게 이등시민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의 순혈적 민족주의가 해외 입양인, 혼혈인 및 중국 조선족 동포에 대해 가하 정신적 상처를 생각해보라.

p82

 

신기욱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긍정적인 내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압력이 단순한 내집단 선호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내집단 구성원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백인-남성-부자-비장애인-이성애자-발전주의자들이 민족이나 바람직한사람을 대표하게 되고 그들의 헤게모니는 소수종족-여성-가난한자-장애인-동성애자-생태주의자를 침묵케 한다. 후자는 비민족’, ‘비국민이 되고 만다.

p83

 

김상봉의 발언처럼, 민족주의가 폐기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 없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강제성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일원이 된다는 자아확장의 감각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이다. 사람에게는 개체적 실존을 초월하여 보편적 프로젝트에 헌신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이상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매개체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일을 행했다.

p86

 

물론 앤소니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민족은 사회적 결속, 질서, 그리고 따뜻함을 제공한다. 또한 그것은 문화적 충족, 뿌리, 안전 및 우애에 대한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반면에 전 지구적 문화는 “‘종교의 대용물만이 제공해줄 수 있는 집단적 신앙, 위신, 희망의 자료를 제공할 수가없다. 개인은 민족에 대한 귀속감을 통하여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개체적 불안감을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적인 것을 초월하여 공적인 것에 헌신할 때 느끼는 희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88

 

사회학자 신기욱은 집단적 민족주의때문에 자유주의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고 민주화운동조차도 인종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이고 유기적인 한민족 개념을 뿌리 뽑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의견에 부분적으로만 동의한다. 왜냐하면 정치사회적 자유를 박탈당한 중요한 이유는 반공주의, 국가주의, 권위주의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적 민족주의는 그 박탈감을 덮거나 위로하는 이데올로기였다.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민족주의로부터, 로날드 바이너의 표현을 빌면, “비자유주의적 벌침을 빼려고 노력한다. 윤평중도 벌침을 제어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는 민족주의는 우리의 운명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의 장점을 극대화하되 부작용은 섬세히 제어하는 지혜와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원칙이나 부분적 긍정은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위적 부분적 선택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것은 자동차에서 타이어를 빼버리는 선택과 다름 없지 않을까?

p93

 

4. 민족주의와 젠더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가 페미니즘과 충동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온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1980년대까지는 민주화와 관련해서 민족 문제에 관심이 강했고 운동권에서도 민주화와 민족해방에 대한 관심이 여성문제를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젠더문제를 기껏해야 여러 부문 중의 하나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젠더는 민족이나 계급에 귀속되어 있었다. 대다수 민족주의 이론과 담론은 논의의 주제로서 여성을 배제했다. 민족은 공적 문제이기 때문에 공사구분과 남녀구분을 일치시키는 사고에서 사적 영역을 담당하는 여성은 배제되었다. 즉 남자는 (민족)’ 여성은 (가정)’라는 이분법에 따라 여성이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공적 남성, 사적 여성이라는 이분법은 여성차별 및 억압에서 핵심적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은 자연과 동일시되고 남자는 문명의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당연히 민족은 문명의 일부고 따라서 여성은 문명과 관련이 없는 젠더로 무시되었다.

p107

 

내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국제정치론성과 문화의 정치학수업시간에 발언하는 남학생과 여학생 간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그 차이들은 젠더교육의 결과이겠지만, 여학생들은 덜 애국적이고 더 보편적인 반면 남학생들은 더 애국적이고 더 민족주의적이었다. 이런 차이로 인해 탈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csmopolitanism)에서 여성이 선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은 크다.

p110

 

민족을 성역화하려는 혹은 여전히 최종적 가치기준으로 설정하려는 무의식이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여전히 위험하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에 와서야 민족과 성 담론의 관계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선구적 작업을 여성이, 그것도 해외에 사는 교포여성 지식인들이 시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p111

 

민족적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대상이거나 매개체일 뿐이다. 특히 남성은 정상적 국가, 조국, 민족이 되는 반면에 여성은 주체성을 상실한 패배한 조국의 땅으로 묘사된다. ‘수치치욕이란 표현은 한국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이 다른 외국남성에게 짓밟히는데서 나온다. 한국의 전몰용사들이 위안부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계획에 반대한 것은 이런 심리에서 온다. 여성학자 안연선은 이렇게 말한다. 위안부의 정체성을 붕괴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민족의 수치인 추잡한이미지를 위안부들에게 부과하는 것이었다. 여성의 몸에 식민화된 나라를 연결시킴으로써 여성에 대한 성적 폭행은 민족에 대한 굴욕과 수치, 민족적 자부심의 붕괴로 해석되었다.”

p113

 

2000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한미행정협정) 개정운동 당시 한 시위대의 구호는 “SOFA 협정 개정하여 우리 처녀 지켜내자였다. 여기에는 가부장적 사고와 순결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즉 이들은 이 문제를 인권의 침해라는 차원보다는 정조의 침해로 바라본다.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한 (남성) 연구자는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남자들의 비겁함에 대해 비판하고 자책한다. 하지만 이 역시 여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온정주의적 가부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p115

 

미국에서 열렸던 한 세미나에서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 활동가가 이 주제에 관련해, 진보적 남성지식인들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문제를 제기할 때 그의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경험은 무시되었다. 그들은 미국을 탓하는 데만 중점을 둠으로서, 한국여성들이 한국 군사시설 근처에서 한국 군인에게 성적 접대행위를 하는 한국인들 사이의 군대매춘을 포함해 한국사회 내에서 여성의 종속을 강제하는 경제적 문화적 이념적 위계질서 등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한국의 독재체제와 가부장제가 한국여성들에게 매춘을 장려하는 역할을 한 것 등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p116

 

(송연옥)는 직설적으로 민족과 계급문제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들, 사회의 다수파로서의 특권이 주어진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그 구조를 보기 힘든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구조를 조감하는 연습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3세계’(재일조선인도 포함하여)의 여성이 받은 차별과 억압은 가부장적 문화와 종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민족억압에 의해 가부장적 문화가 강화된다는 식민주의적 구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괴로워하지 않아도라는 표현은 인신공격에 가깝다. 그런 식의 비판이라면 부르주아 출신 학자가 노동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룰 수 없으며 남성 연구자가 여성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발상이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미국인인 브루스 커밍스 같은 한국학 석학이 한국민족의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생긴다. 어떤 사람을 특정한 범주로 환원시켜 비판하는 것은 합리적 상호토론의 필요성을 무화시킨다.]

p123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는 민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의 문제이며 계급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본질적이라는 말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는 민족의 문제를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안부’ ‘모집과정의 일부에 조선인 포주, 부모, 돈 버는 것 등이 개입되어 있었으며 그들 중 일부를 이끈 것은 쌀밥의 유혹이었다는 주장을 편다. 그들은 한결같이 가난의 집안의 딸이었다. 이처럼 박유하의 문제의식에는 계급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그들을 강제로 끌어간 주체들이 우리 안에도 있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p125

 

3세계의 남성은 여성의 서구화를 막기 위해 그것에 매우 부정적인 요소를 부여한다. 인도의 경우 보통 여성이 서구화되었을 때 뻔뻔스럽고 탐욕적, 비종교적, 성적으로 문란한특징을 갖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에 반해 찬양받는 여성은 민족적 전통’ (다른 말로 가부장제)을 지킨다. 혹은 전통을 재창조하는 교육받은 신여성도 여성적 가치인 순결, 자기희생, 복종, 헌신, 친절함, 인내심, 사랑의 노동이나 질서의식, 검약, 청결, 책임감, 문자적 기술, 회계, 위생, 그리고 가정을 운영하는규율을 지키도록 요구된다. 그러한 여성은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서구여성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식민지의 남성은 이미 서구에 의해서 자존심이 손상되었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식민지의 여성이 정신적 순결을 지키도록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국 종군위안부의 모습이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로 재현되는 것도 이러한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라 하겠다.

p129

 

5. 진보적 민족주의 논쟁

 

(진보적 민족주의자 안병욱의 주장)

7) 진보는 약자계급의 집합에 의해 움직이지만 진보운동을 담지할 노동계급의 성장은, 분단과 전쟁에 따른 반공주의적 억압 때문에,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제 위상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여전히 민족이 중심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9) 탈민족주의는 논쟁을 위해 억지로 제기된 측면이 강하며 일부논자들은 국수적이거나 파시즘적 사례를 끌어다 한국 민족주의를 매도하고 있다. 탈민족 탈근대 주장에는 구체적 대안이 없고 한국 사회운동의 구심점을 해체함으로써 허무와 공허감을 조장한다. 탈민족주의는 불균등한 세계체제에 대한 대응이 되기 어렵고 지배권력에 의한 통제와 순응을 지지한다. 10) 시장만능을 내세우며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및 초국적 자본에게는 한국사회의 오랜 공동체적 유대관계와 민족의식, 관습, 언어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잇다. 위계를 만들어내는 자본에 대한 방책은 자율적 의지에 기반한 유대에서 찾아야 한다. 민족의식을 매개로 지탱해온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기반과 역사성을 탈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허물어낸 틈새로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펼쳐지고 있다. 11) 물론 탈민족을 향해가는 세계사의 흐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민족주의가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단지 현재의 한국적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안병욱과 유사한 사상이지만 조금 거리를 두는 사회학자 김동춘)

17) 분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진보적 요소를 약간이라도 갖고 있다. 분단극복과 통일국가 건설의 지향이 인권/평화/민주주의/공공성 확보와 같은 가치의 인도를 받는 한 민족주의는 진보적 의미를 지닌다.

p140

 

 

(탈민족주의 대표적 연구자 임지현) 한반도 전체 대중의 정서가 민족주의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한, 작금의 조야한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진정한 길은 민족적 형식을 살리면서 그 안에 진보적 내용을 채우는 즉 건강한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데 있다. 특히 지구촌화와 더불어 몰가치적 국제주의가 남한의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로 부상하는 현 상황에서 근원적으로 민족주의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건설적 대안의 모색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민족주의 자체가 아니라 어떤 민족주의냐가 문제이다.

p147

 

둘 다 초국적 자본의 광풍을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비판적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을 멈추거나 허물어져가는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민족의식을 매개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약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크고 작은 공동체를 파괴한 이념 중에는 민족주의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발언이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탈민족주의 입장에 선 임지현과 박노자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박노자는 국제주의적 계급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연대가 진보적 거시적 담론이 되는 게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지현은 신자유주의를 서울의 중심과 뉴욕의 중심이 연합하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주의 네트워크로 규정하고 지배엘리트의 국제적 연대에 비교해서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가 약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토빈세 논쟁이나 유럽의 노동운동 지도부의 헤지펀드에 대한 공동대응 움직임에서 보듯이, 자본주도의 지구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효율적 무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연대인 것이다.” (중략) 자본과 상품이 무차별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운동-노동, 환경, 여성, 비정규직, 이주자운동이 민족이라는 코드에만 의존해 국제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점점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일국적 관점과 운동으로는 불가능해지고 있다. 개인을 넘어서면서도 민족에 안주하지 않으며 민족국가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 시민사회 및 시민운동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p151

 

민족주의 강화는 한국 재벌자본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다. 1998~99년 경제위기 시 미국 음모론적 민족주의와 금모으기 애국운동에 재벌들이 호의적이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금모으기 운동선진국 음모론내부의 단결을 외치며 외부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되레 재벌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고 한국사회의 내부적 변혁을 오히려 가로막는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이라는 코드를 통한 한국의 대자본과 한총련의 입장이 이렇게 유사한 때가 있었는가? 그 당시 한총련과 재벌은 아주 동질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탈민족주의가 초국적 자본의 공간을 열어준다는 주장은 탈민족주의를 단일하게 인식한 탓이다. <조선일보> 등에서 환영하는 탈민족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와 그것에 기초한 세계화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우파의 탈민족주의와 임지현, 박노자 등의 진보적 탈민족주의(혹은 세계주의)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p153

 

6. 민족주의, 유효기간이 끝나다?

 

최장집은 한국 민족주의의 비극이 두 가지라고 말한다. 첫 번째는 일제하에서도 유지되었던 사회주의적-민주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의 실패와 해체며 둘째는 우파민족주의가 결과적으로 분단국가 형성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게 된 것이다. 해방 전후의 우파적 민족주의는 남한에서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로 치환되면서 그 적실성과 유효성을 상실했다. 남한의 정권은 민족적 정당성을 결여했기 때문에 반공적 냉전주의는 그 공간에 들어와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과 북조선을 하나로 묶는, 진보진영의 민족담론은 반공중심적 냉전체제에 균열을 내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시로서의 반공을 부인하고 대신 거기에 민족을 넣자고 주장한 한 국회의원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된 것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진보성은 냉전체제가 1980년대 말에 사회주의권이 붕괴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것은 저항적 민족주의가 미국의 패권주의적 세계 지배 및 주변부에 대한 서구/일본의 신식민주의적 경제착취에 대항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미소 간의 냉전주의적 이분법적 질서 속으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자주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p162

 

여성학자 김은실의 지적처럼, “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는 그 언설이 어디에서 작동하는지, 누구에게 말해지는지 그리고 어떤 정치적 주체를 구성하는지에 따라 저항의 목소리로, 혹은 지배의 목소리로 그 민족의 주체를 달리 구성해내기 때문에 민족주의 일반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두아라(Prasenjit Duara)에 의하면 민족에 대한 목소리는 단일하지 않다. 모순되고 서로 대항하면서 타협도 가능한 음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민족적 정체성은 다중적이며 변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유동적 감정이다. 신기욱에 의하면 민족적 정체성은 비민족적, 초민족적 정체성과 경합하며 때로는 혼합된다. 한 예로 한국의 수출중심전략은 초민족적이었지만 그 목표는 민족주의적이었다.

p164

 

(우파민족주의자 이선민) 한국의 민족주의는 19세기 말부터 생겨난 애국계몽운동과 일제시대 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민족독립운동의 중심이념이 되었으며 내부결속과 독립에 필요한 피아의 구분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일제시대 독립운동에서 민족주의자였던 엘리트들은 결국 1930년대 중반부터 강화된 일제의 탄압으로 대부분 친일파로 둔갑했으며 반면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은 대체로 국내외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던 게 사실이다. 독립운동의 중심이 우파민족주의에게 있었다는 이선민의 주장은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p166

 

한국에서 보기 드문, 탈민족주의 한국사학자 윤해동의 말처럼 저항민족주의의 틀 안에서 진전된 민주주의 수준만큼만 민주주의는 허용되고 이제 민족주의는 대체로 민주주의에 억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전후민족주의의 특징이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무성찰적 집착은 위험하다.

p167

 

진보는 근본적으로는 역사가 필연적으로 단계를 밟아 발전한다는 사관에 근거해, 정해져 있는 목표와 진리를 두고 그것만 이룩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마르크스적 공산주의 유토피아 및 그날이 오면은 그러한 사고방식의 단적인 에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화된 임금노동자나 민중을 변혁과 역사의 주체로 설정한다. 사실 민중이라는 애매한 단어가 등장했던 것은 계급이 갖는 좌파적 성격을 반공담론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드러내기 어려워서 에둘러 표현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동자계급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하위주체들을 혁명대오에 포괄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1980년대의 민중적 민족주의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즉 내부적으로는 민중중심적이고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특히 미국에 반대하고 북조선을 우리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로 진보적 좌파는 그 적실성을 상당부분 잃었고 1990년대부터 거세진 세계화 바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한국에서 진보적 민족주의는 민노당이나 진보적 통일운동의 노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는 전통적 진보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했던 국가중심적 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진정한 사회주의와 분리시킴으로써 진보좌파의 역사적 타당성을 구제하려는 입장을 갖는다. 진보적 민족주의는 민족을 우선적으로 내세우고 계급은 그 다음에 나머지는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1980년대의 NL(민족해방계)를 대표적인 진보적 민족주의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p168

 

진보적 민족주의는 현재 한국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일단 그것은 물론 퇴행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관에 반대한다. 일차적 목표는 제국주의나 신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것이고 따라서 인종적 민족적 차별을 반대한다. 그러면서도 민중이나 계급중심의 역사관을 보유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 여성주의나 자유주의, 환경주의에 무관심하거나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젠더, 환경,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래도 일차적으로 진보에서 나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체로 진보적 민족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적 진보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p171

 

허동현, 탁석산, 윤평중, 박호성, 장문석 모두 한결같이 민족주의의 폐해를 인정한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의 폐기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지만 왜 민족주의가 아직도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들의 주장은 민족국가 및 민족주의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예측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민족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폐기되지는 않을 것이며 민족을 초월하는 지구공동체의 형성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p183

 

민족주의자로 여겨졌던 한국사학자 박찬승이 최근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저작에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공존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의 통합, 동북아시아의 공존공영, 더 나아가 인류사회의 발전에 대한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마련할 것을 강조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파적 세계주의자로 분류되는 소설가 복거일도 민족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네 가지 자유주의적 원칙을 제시한다. “국익을 개인들의 이익으로 환원하는 것 ; 국경 밖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 국제적 경기규칙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 ; 그리고 민족주의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것.” 모두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다. 특히 타민족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원칙은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장집은 민족주의가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정치적 실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 이념적 지표를 부정하고 이를 영미식의 자유주의와 같이 너무나 거리가 먼 이념으로 대체할 때 그것은 아무런 현실적 기능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p185

 

민족주의의 폐해를 밝히고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민족환원론이며 그것에 대한 과도한 심판이다. 모두가 민족주의의 업보인 양 단순화한 나머지 독재도 개발도 가부장제도 모두 다 민족주의 대문이라는 식의 언술은 역사적 현실에 있는 복잡한 인과관계와 뒤얽힌 상호작용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여기서 문제시하는 것은 그런 부정적 측면과 민족주의가 결합하는 방식과 내용이다. 한 글에서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민족주의의 위험을 지적한다고 해서 다른 이데올리기가 덜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주류적 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 과잉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했을 뿐이다.

p188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그것을 견제하고 제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책을 정리해보자. 첫째, 민족주의 특히 종족민족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 민족을 상대화하고 그것이 근대에 발명된 정체공동체적 개념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국사는 한국사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을 세계사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를 자꾸 특수한 것으로만 규정하지 말고 그것의 보편성과 특수성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민족에 대한 정의도 혈통의 신화와 본질주의가 혼합된 기존의 것은 폐기해야 한다. 둘째,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 민주주의, 인권, 환경권, 개인 및 생명의 권리 및 평등, 존엄성 등을 확산하려는 운동이 강해져야 한다. 셋째, 민족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약화될 수 있도록 다른 가치체계, 가령 사회정의론, 세계시민주의, 페미니즘 등을 확산, 보편화해야 한다. 넷째, 다른 정체성, 특히 계급적 정체성이 민족적 정체성에 압도되기보다는 그것과 경합하거나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나는 한국인이기에 앞서 노동자다, 여성이다, 장애인이다, 혹은 동성애자다 등. 다섯째, 민족/국민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가 가까운 미래에 법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민족국가가 사라지기 전에는 쉽게 실현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중/다중 국적을 수용하고 특정한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확산이 필요하다. 여섯째,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범주보다는 주민을 중심으로 한 실질적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생성, 유지해가는 게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이런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열린 혹은 진보적 민족주의에 대한 감정적 미련이 아니라 환경, 민족, 계급, 성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모색이다. 진보의 재구성 혹은 탈진보를 통하여 진보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민족을 다만 중요하고 다양한 범주들 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새로운 진보가 요구된다.

p190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아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그것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클 뿐이다. 지금 21세기의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고민과 진보적 대안 모색에서 필요한 것은 탁석산이 인용한 사학자 지수걸의 말대로 민족주의에 대해 겸손한 장례식을 치루는 일이다. ‘장례식에 필요할지도 모를 글 한 구절을 읽어본다. ‘나아가서 나도 예컨대 인간이 짓밟힐 때 그 짓밟는 자가 이 민족이요, 짓밟는 자가 설령 내 조국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옹호하기에 동댕이친 펜대 대신 총들 들고 제 조국에까지 감연히 항거하고 일어서는 용기와 지성을 가진 위인이기를 바라고 싶을 뿐이다. (청마 류치환의 <문학과 인간> 중에서)


우리의 민족주의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우리를 세뇌했다. 붉은 악마를 보며 가끔은 저게 뉴스에 실릴 만한 것인지, 사람들이 회자하는 만큼 정말로 대단한 것인지 의아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발화자는 매국노가 되어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과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민족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이 그지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계화 흐름에서 우리가 잘 적응하려면 탈민족주의를 어느 정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탈민족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민족주의에 굉장히 빠져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지한 뒤로는 나의 주변, 나의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다문화 가정, 외노자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아낀다. 누구도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민족적 적으로 간주되는 일본인에게도 통용된다. 그 어떤 역사를 가졌든지, 어떤 인종이든지, 어떤 학교를 나왔든지, 어떤 지역 출신이든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구조적 모순을 타개하여 효율적인 국가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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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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