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_조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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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영화화되기도 했고, 넷상에서 많은 화제가 된 책이다. 내용에서 깊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단순한 일화의 나열식 구성이다. 연대기 형식의 소설이지만, 기승전결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여성이 성장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성차별을 그리고 있다. 순수소설과는 거리가 멀고,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프로파간다 매체물에 가깝다. 만일 이 책을 신봉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무능한 남성을 공격하는 당당한 여성의 행보, 여성이 사회와 남성으로부터 겪는 억울함에 깊이 공감한 부류일 것이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공격할 대상을 찾는 여성에겐 피로회복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프로파간다 매체물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1. 3분만에 읽기

김지영이 빙의에 시달리면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고, 김지영의 과거의 이야기부터 순차적으로 묘사된다.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여아낙태가 심각하다. 강인한 엄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업주부를 하며 부업을 뛰고 악착같이 살아온다. 아빠는 공무원인데 무지몽매하다. 여성은 남자형제들의 뒷바자리를 하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남자짝꿍이 실내화로 장난을 쳤는데 본인이 억울하게 혼났다. 이에 대해 선생님이 뒤늦게 알게 되어 남자짝꿍을 크게 혼냈다. 근데 남자짝꿍은 사실 김지영을 좋아해서 장난친거라고 너가 이해하라고 한다. 선생도 폭력을 애정표현으로 둔갑시키는 똑같은 쓰레기다. 급식 순서는 항상 여자가 뒷 번호여서 늦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여자들 늦게 먹는다고 항상 혼내서 억울했다. 복장규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심했다. 여자만 구두 신게 해서 활동적인 것들을 제한 당했다. 바바리맨 나타나서 일진들이 응징해줬는데 오히려 징계받았다.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 할머니가 막내 아들은 남자라고 편애하고 딸들은 무시한다. 학원이든 교회든 과외든 남자들은 죄다 변태였다. 심지어 교복 검사하는 교사조차도 변태였다. 남자가 스토킹해서 무서웠는데 어느 한 여성이 도와주었다. 모든 위기에서 항상 여성이 도와준다. 남자도 도와주지만 항상 부족하다. 문자로 불러서 뒤늦게 온 아빠는 쓸모없었다. 엄마가 김은영에게 교대를 추천해서 대판 싸웠다. 김은영은 육아하기 좋은 직업인 선생님 같은건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여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언니(김은영)는 평소에 한국인이 최대한 없는 북유럽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은퇴후 엄마 말 듣고서 친구와 함께 하려던 중국 사업을 포기하고 장사를 시작한다. 처음엔 많이 말아먹었고 끝까지 말아먹었다. 하지만 포기하려던 아빠를 막아선 엄마가 마지막에 추천한 죽집은 성공한다. 그리고 엄마가 산 땅은 값이 엄청나게 오른다. 엄마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자상하다. 아빠는 무능하고 꼴값떨고 쓸모없다. 김지영이 대학에 들어갔더니 여자는 등산 동아리 회장 못한다고 복학생이 엄포를 놓는다. 10년 뒤에 첫 여성 등산 동아리 회장이 나왔다. 동아리 여자선배였던 차승연은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하는구나' 라고 말하며 적적해한다. 모범적으로 보이던 남자선배는 동기들과 함께 MT자리에서 취하더니 김지영에 대해 씹다 버린 껌이라고 망발을 내뱉었다. 자고 있는척 하던 김지영 억울하고 슬프다. 기업은 남성을 선호한다. 온갖 여성이 차별당한다는 통계가 쏟아진다. 택시기사는 여자를 첫 손님으로 받으면 재수없다고 안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김지영이 면접 복장이라 선심 쓴다는 듯이 얘기하며 태워준다. 그래놓고 돈은 받더라. 면접 때 상사가 스킨십하면 사후대처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3명의 여성이 각기 다르게 대답했지만, 셋 다 떨어졌다. 결국 어렵게 취직했다. 여성 신입은 눈치 빠르고 일처리도 똑바르다. 남성 신입은 눈치 없고 무능력하다. 클라이언트도 무례하다. 역시나 남성이다. 여성의 눈치 빠르고 지혜롭고 선하고 헌신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일화들이 등장한다. 임산부는 30분 늦게 출근해도 된다는 회사 방침을 남성 직원들이 비아냥 댄다. 분노한 김지영은 그딴거 필요없다고 큰 소리쳤다. 하지만 출근 시간대 지하철은 너무 힘들다. 후회된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하니 분노한다. 같이 하는 거를 왜 도와준다고 얘기하냐고 버럭 화를 낸다. 남편 따위는 다시 조용히 깨갱한다. 임신을 하면 생기는 여성의 문제들이 길게 묘사된다. 회사에서 몰카 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과장이 그 몰카사진을 돌려보다가 걸려서 사건이 밝혀진다. 역시 남자들은 추악하다.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라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남편 따위가 이를 막아선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는데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하게 두는 것은 말리고 싶다고 한다. 위로도 안되고 역시 쓸모없다. 카페에서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데 맘충이란 소리를 들었다. 억울하다 너무너무 억울하다. 현실로 돌아온다. 우울증에 걸린 김지영의 이야기였다.


2. 프로파간다 매체물인 이유

남성vs여성 구도

항상 여성은 억울하다. 여성은 선하고, 죄 없고, 능력 있고, 지혜롭고, 현명하다. 하지만, 남성은 악하고, 무능하고, 멍청하고, 쓸모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남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서 여성은 억울하다. 내가 소설을 보는 이유는 입체적 인물 때문이다. 이분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인물 그 자체의 매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절대선(여성)과 절대악(남성, 사회)이 존재한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설정에 한숨만 나왔다. 이런 극악의 구도가 어떻게 쓰일 수 있었을까. 작가의 생각에 radical feminism이 지배적일 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대기 형식에 동일한 주인공의 나열된 일화

기승전결 없는 재미없는 구성에 주인공의 많은 일화가 시간 순으로 나열된다. 지루하기도 하고, 계속 성차별 상황에서 여자는 억울하고 답답한 입장이다. 상황에서 그 양상이 극명하다보니 오히려 현실감과 몰입감이 떨어지고, 호의적인 태도로 읽기 시작했던 나로서도 충격적이었다.

넘쳐나는 주석과 통계를 이용한 편향적인 해석

소설에서 이렇게 주석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처음 본다. 애초에 소설이 아닌 것이다. 어떤 성차별에 대한 묘사가 극단적이거나 근거가 필요할 때 주석이 나타났다. 주석이 많은 것은 작가 본인도 이를 소설로써 작성한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어떤 하나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여 납득 시키려는 의도다. 그리고 통계는 편협하게 해석되어 있다. 산술평균과 중위값을 두고 비교하는 것과 임원이 포함된 임금 통계를 가져와서 남녀의 wage gap을 지적하였다. 물론, 이는 기자들도 잘못 해석하여 문제된 것들이니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그렇지만 편향된 해석을 위해 자료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3. 소설 속에 남성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아버지, 동생, 할머니 순서로 퍼 담는 것이 당연했고,

모양이 온전한 두부와 만두와 동그랑땡이 동생 입에 들어가는 동안 언니와 김지영 씨가 부서진 조각들을 먹는 것이 당연했고,

젓가락이나 양말, 내복 상하의,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들이 동생 것은 온전하게 짝이 맞는데

언니와 김지영 씨 것은 제각각인 것도 당연했다.

우산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쓰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썼고,

이불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덮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덮었고,

간식이 두 개면 동생이 한 개를 먹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나머지 한 개를 나눠 먹었다.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p.25

*5살 어린 막내 남동생의 분유를 뺏어 먹고 느낀 감정선. 


김지영 씨가 직접 인사해야겠다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p.69

*유일하게 남성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가 담긴 부분

중국과 무역을 하겠다던 동료는 퇴직금을 몽땅 날렸고

여전히 공무원인 동료도, 아버지처럼 퇴직 후 개인 사업을 하는 동료도 수입이 고만고만하더란다.

아버지가 벌이도 가장 좋고 집도 가장 넓었다.

게다가 딸 하나는 선생님이고, 또 하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고, 마지막으로 든든한 아들까지 두었다며 다들 부러워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껏 어깨를 뒤로 젖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자 어머니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 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 그럼! 절반은 당신 공이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미숙 여사님!”

절반 좋아하네. 못해도 73이거든? 내가 7, 당신이 3.”

어머니는 다시 길게 하품을 하며 베개와 이불을 거실에 던져 줬고,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같이 자자고 했지만 아들도 술 냄새가 난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기분 좋은지 씻지도 않은 채 이불을 돌돌 말고 거실 한가운데 쓰러지듯 누웠고 곧 코를 골았다.

p.89  

*철없는 아빠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 나도……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나 야근도 편하게 못 할 거고.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그래, 부양!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p.137 

*철없는 남편


페미니즘의 미래는?

   페미니즘을 응원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여성의 권익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Radical feminism에 의해 순조로워 보였던 변화가 멈추고 오히려 역행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사회는 소수의 혁신가가 바꾼다. 하지만, 그 변화에 동참하는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사야 한다. 그러나 흔히 볼 수 있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사회 변화를 위해 운동하기 보다는 본인의 분노를 풀어내는데 급급해보인다. '82년생 김지영'도 작가 본인의 분노를 풀기 위해 써내린 작품으로 보인다. 이것이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역행하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학도로서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매우 비극적이다. 현재 수요측 요인을 회복하기 위해선 여성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더 나은 사회의 변혁을 위해 이 책을 비판하고 새로이 페미니즘을 대표할 수 있는 책이 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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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선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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